여자가 말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어떤걸까? 어떤 부분을 보고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정의할 수 있는걸까? 살다보면 내 마음이 좋아하는 마음인지, 부러운 마음인지, 동경의 마음인지, 그냥 단순한 호감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 분명 다른 형태의 마음들이지만 이상하게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다 같은 마음이라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남자가 말했다. "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아마도. 상대가 있지 않은 곳, 있지 않을 곳에서도 그 사람의 존재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음... 예를들면, 그 사람의 차와 같은 색상, 같은 모델의 차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여기에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혹시하는 마음에 차 번호를 보게되는 그런게 아닐까? 차 번호를 확인 하고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피식 웃는거지. 아마 그런 마음이라면 많고 비슷한 좋음 중에 정말 좋아한다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남자가 이어말했다. "나는 길을 가다 핑크색 스파크를 보게되면 번호판부터 보게 돼. 예전에는 그냥 아는 사람들의 차번호를 외우는 습관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지난 기억들을 되돌아보면 유독 핑크색 스파크를 볼 때면 괜한 기대심리가 발동하고 아닌 줄 알면서도 괜히 번호판을 한 번 더 보게 되더라"

"...."

"왜?"

"아니, 사람 마음이란 건 참 어렵다ㅎ. 그지?"

"세상에 어려운게 사람 마음뿐이겠냐."

'따릉~'

골목 끝에 있는 빵집에서 오후판매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빵냄새가 금세 온 골목 구석구석에 스며든다.

남자가 여자에게 물었다
"야 너 약속 있다고 하지 않았냐? 시간 다 된 것 아니야?"

"그래 나 먼저 가볼게. 담에 또 봐"

남자는 자리에 앉아 여자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삐빅'

저 멀리 여자가 차에 올라탄다. 그녀의 손에는 쉐보레 차키가 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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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의 뜨거운 여름 아래 저 먼 숲 속에서 죽어라 우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왕복 6차선 도로를 넘어 내 귀에 들려온다.

  매미는 무엇을 위해 우는가
  칠 년동안 땅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에 비해 세상에 나가 칠 일 밖에 살지 못하는 것이 억울해서일까.
  아니면 세상에 나와 첫 눈에 반한 상대를 행여나 놓칠까 하는 마음에 배가 떨어져나가라 힘껏 우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자신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기라고 몸 속에 새겨진 프로세스대로 그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마음도 없이 기계적으로 우는 것 뿐인걸까.

  자의든 타의든 열심히 우는 매미를 거울삼아 돌아본 한 인간에게서는 그 어떤 열정도, 목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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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머리에 꽃 한 송이

어머니의 스카프에 꽃 한 송이

막내 동생의 신발 끝에 꽃 한 송이

꽃들을 내 눈동자에 담아둔다

평생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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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슬플 때
몸이 아플 때
그리고
매일 매일 네가 필요해

휴지야

2019. 04.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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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당신의 의지는 안녕하십니까>

어? 떨어지나?

어? 안 떨어지네?
에이 안 떨어지는 거였네

 #1.

  한 남자가 협곡을 걷다 낭떠러지로 떨어져 벼랑 끝에 서게 되었다. 이 남자가 걸어오던 길과는 벌써 멀어져 저 위에 누가 있는지 식별이 안될 지경이었다. 남자가 서있는 벼랑은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마냥 딱 두 발만 놓을 공간만 있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저 아래로 떨어질 상황이었다. 남자는 한동안 긴장을 놓치지 않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긴장감은 줄어들었고 조금씩 안정감을 찾아갔다.

  "어? 생각보다 위험하진 않네?"
그 생각이 들자 긴장했던 몸이 조금씩 풀리면서 안도감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제 이 남자에게는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남자는 하품까지 하고 있었다.


#2.

  한 여행가가 협곡을 걷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협곡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앞장서서 걷고 있는 낯선 사람이 있어 조금은 덜 지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앞장서서 걷던 남자가 발을 헛디뎠는지 그만 협곡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다급하게 달려가 협곡 아래를 내려다 보았는데, 그 사람의 흐린 실루엣만이 보이는 듯 하였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주변을 보니 아마 그 남자의 허리춤에서 풀어진 듯한 밧줄이 팽팽하게 떨고 있었다. 줄이 떨리고 있는 것을 보니 떨어진 남자가 아직 살아있다고 확신했다. 여행가는 그 사람이 떨어지지 않도록 밧줄을 힘껏 당겼다. 혹시라도 아래에서 당기는 힘이 느껴진다면 그 남자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줄을 한참 붙잡고 있는데 등산객 두 사람이 지나가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설명을 해주었더니 곧 등산객 두 명도 밧줄을 잡고는 그 남자를 끌어올리자고 했다. 떨어진 남자가 올라오려 한다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구조할 수 있다고 했다. 마침 해도 산을 넘어가고 있어서 서로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밤이 되기 전에 구조를 끝마쳐야 했다.

#3.

  이제 벼랑 아래의 남자는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발 끝에서 돌 가루들이 저 바닥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이젠 긴장을 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느낀 거지만 허리춤에 있는 밧줄에 장력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어디 나무뿌리에 밧줄이 걸린 것 같았다. 괜히 어설프게 밧줄을 당겨 올라가려 하다가는 줄이 끊어지거나, 나무뿌리가 뽑히거나, 자신이 발을 헛디디거나, 어느 쪽이든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도 남을 운명이었다.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구원해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밧줄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고, 올라가려다 죽든 굶어 죽든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괜히 어설프게 행동하다 명을 재촉할 바에야, 누군가 구원해주리라는 희박한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연명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

 결국 밧줄을 힘껏 당기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야 할 길도 가지 못한 채 추워지는 산 속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만 정작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은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망상 속에 빠져 하품만 하고 있었다.

 

-2021. 02. 18 작성
- 2021. 04. 27 검수 및 수정

 

자신 때문에 고생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려는 사람, 혹 나의 모습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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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세상을 한 층 더 아름답게 보는 일임에 틀림없다. 평소에는 눈길도 안가던 골목길 어귀의 꽃 한송이도 아름답게 보이고, 평소에 먹던 파스타도 유독 맛이 깊게 느껴지고, 잘 들리지 않던 동네의 새소리도 아침을 알리는 소리가 된다.

하지만 상대를 좋아하는 그 마음이 정말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인지, 아니면 감시함의 마음인지, 동경의 마음인지 우리는 때때로 헷갈릴 때가 있다. 분명 서로는 다른 형태의 마음일텐데 어째서인지 우리는 그 뚜렷한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헷갈려할 때가 많다


.
난 중학교에 입학하던 시절부터 장래희망에 대해 고민했다. 한창 기타를 배우던 시절이라 막연하게 기타리스트가 되겠다고는 생각했지만, 사실은 무엇을해야할 지, 어떤 직업을 가져야할 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렇다고 공부랑 친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거리가 멀었다.
.
고등학생때도 장래희망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삼 년간 고민해도 다시 원점이었다. 미용을 배우다가도 몇 달 안되서 그만뒀고, 자동차를 공부하다가도 그만두었다. 막막했다
.
성인이 되며 처음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입학만을 기다리던 그 시절에는 살아온 인생 중 가상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가 열심히 집중하고 노력할 명확한 목표가 생겼다는 사실에 그렇게 들떴으리라. 그 때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미친놈이냐는 소리를 들을만큼 웃고다녔고 그 누가 욕을 해도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외부요인은 그 어떤 데미지도 주지 못했다. 입학 후 과제에 시달리며 그 행복했던 시간도 끝이 났지만 ㅋ
.
그 후 군대를 전역하고 몇 년동안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며 진로탐색을 했지만 스물후반에 결국 뒤늦은 복학을 하기로 했다. 성인이 되고 대체 무엇을 한걸까 싶었다.
.
졸업을 하고 전문학사라도 따면 취업의 선택지가 그나마 넓어질 것 같던 나의 생각은 환상에 불과했을까. 공기업/대기업이 아니고서야 학벌을 보는 곳을 없었고. 전공을 살린 직장은 입사 4개월만에 문을 닫았다. 밀렸던 임금 240만원도 노동부와 검찰을 들락날락하며 1년만에 겨우 받았다
.
디자인을 이제 쳐다보지 않겠다고 다시 학교를 입학했지만 할 줄 아는게 디자인이라 또 디자이너를 하겠다고 취업을 했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환경은 몇 년이 지나도 바뀌는게 없었다.그 때나 지금이나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외노자 인생이었다.
.
장래희망을 고민하던 중학생시절부터 15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원점이다. 삶의 목표도 삶의 방향도 잡지 못했다.
.
N포의 시대. 이 말이 처음 나왔을 때는 공감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힘든 것을 피하기 위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겪는 어려움을 내 자식에게는 물려주기 싫은 그런 마음이겠지. 누군들 좋은 가정 가지고 싶지 않겠는가. 누군들 좋은 인연과 좋은 시간 보내고 싶지 않겠는가.
.
하지만 미래가 불확실한 요즘 젊은 세대에게 그 좋은 감정과 시간은 훗날 새로 태어날 생명이 짊어질 가난의 대물림 앞에서는 빛 바랜 사치였으리라.
.
빛 바랜 사치품.
빛나야 할 액세서리가 빛을 잃었을 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 때 내게 가장 소중했던 것이 어느 새 빛 바랜 사치품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부자를 시기하는 마음빈곤자들의 이야기>

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현란한 두 재봉사의 손놀림이 자신의 온 몸을 훑으며 현란하게 움직였지만 거울 속엔 벌거 벗은 자신의 모습과 낯선 네 개의 손만 있었을 뿐, 천쪼가리라고는 한 올도 없었다. 그래도 왕은 소문과 체면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1. 두 남자

덴마크의 어느 왕국에 살던 두 가난한 형제는 오늘도 끼니를 해결하지꙼̈ 못해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다. 잘생긴 편에 속했던 두 형제였지만 어릴 때부터 게으름이 온 몸을 지배했던 두 형제는 잘생긴 얼굴에도 불구하고 게으른 몸과 가난한 마음 덕분에 동네에서 인기가 없었고, 그 누구도 일을 시켜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두 형제의 귀에 왕국 광장에서부터 들려오는 소식이 있었으니, 바로 취임한 지 한 달 쯤 된 왕이 자신의 옷을 만들어줄 귀족 이하의 국민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일종의 공모전인 셈인데 제작기간동안 왕궁에 기거하며 숙식을 해결해 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듣자하니 사람들은 대단하다는 말만 하지꙼̈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이 소식이 공표된 지 일 주일이나 지났지만 아직 사람을 못 찾았다는 말을 들었다.

형이 옆에 있던 행인에게 물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있는데, 왜 다들 한다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오? 그것도 일 주일 씩이나?”

행인이 말했다.

“쯧쯧, 젊은 사람들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너무 안 듣고 살았나보구먼, 공문을 보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아니오? 하지만 새로 취임한 왕이 그렇게나 까다롭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혹여나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우리같은 천민들이 목숨을 부지할 수야 있겠소?"

형제는 고민했다. 어차피 이대로는 배고프고 가난한 삶을 면치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요절할 것이 분명했다. 이래도 저래도 죽는 삶이라면 인생의 단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것을 걸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해서 모든 게 다 해결되진 않는 법.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방법을 찾은 두 형제는 주변 연못에서 샤워를 하고 칼로 면도를 한 뒤 왕궁으로 찾아갔다.





#2. 대면

왕은 만두같이 생긴 얼굴에 얼굴에 기름이 좔좔 흘렀다. 형제는 어릴 적 어른들이 들려주던 동화에서 묘사되던 악덕영주 혹은 탐욕적인 왕의 모습을 떠올렸다. 왕을 조금만 띄워주면 자신들이 구워 삶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왕이 말했다. “오, 그대들은 누구인고? 2주일이 되도록 아무 소식도 없기에 상심이 컸었는데, 짐은 매우 기쁘게 생각하네.”

“저희는 조그만 마을에 사는 재봉사 형제입니다. 어릴 적부터 재봉사의 집안에서 태어나 재봉을 배우며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는 둘이서 재봉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아 간판도 없이, 조그만 가게에서 주문제작만 하며 살았는데, 아무도 폐하께서 마련하신 이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없기에 안타까워 찾아 뵙게 되었습니다.”

두 형제는 서로 눈치를 살피며 능숙하게 거짓말을 하였다.

왕은 아주 흡족해했다. 특히 제작주문이라는 말에 왕은 더 이상의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되겠다며 시종을 불러 바로 형제가 묵을 방과 시설들을 소개해주라고 하고, 원단을 재단실로 옮겨 놓으라고 했다.

“아참, 치수는 언제쯤 재면 되겠나? 그리고 제작기간과 전반적인 일정을 미리 알려줬으면 하네만”

형제는 일정을 알려달라는 말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거짓말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이지꙼̈ 옷을 만들기는 커녕 집에서 바느질조차 안 해 본 사람들이 제작기간 따위를 알 턱이 없었다. 두 형제는 왕궁의 생활을 되도록이면 오래 즐기고 싶기에 한 달 쯤 걸린다고 말했다.

“한 달? 흠.. 시간이 꽤나 걸리는 군, 뭐 좋네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것이겠지꙼̈”

왕은 제작기간이 좀 오래걸리지꙼̈ 않나 싶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3.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할 뿐,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재봉사 형제여, 어서오게”

두 형제는 왕의 옷을 제작하는 재단실에 들어가고는 턱이 빠질 정도로 놀랐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재봉사가 작업을 하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 재단실 안에 화장실이며, 세면대며 식탁과 조그만 발코니까지꙼̈ 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옷을 제작하는 공간만해도 조그만 마을의 촌장집 만한 크기였다.

왕은 쭈뼛쭈뼛하는 재봉사 형제에게 말했다.

“긴장하지꙼̈ 말고 앞으로 한 달 동안 그대들이 쓸 공간이니 편하게 쓰도록 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시종을 부르게. 불편한 것들을 다 해결해 줄 걸세.”

“ㄴ..네 감사합니다”

“자 그럼 치수부터 재어볼까?”

이제 엎질러진 물이었다. 더 이상 쭈뼛대다간 이도저도 아닌채로 목이 달아나기만 할 판이라고 생각한 형은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옆에 있던 줄자로 뒷목점부터 요추까지꙼̈. 가슴둘레, 허리둘레 등 치수를 꼼꼼하게 재(는 척 하)고 동생에게 불러주었다. 동생은 형의 애드리브에 깜짝 놀랐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 형이 불러준 치수를 다시 말하며 종이에 받아적었다. 동생은 형의 이런 모습에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왕은 그런 동생의 마음도 모르고 자기 일을 즐겁게 한다고만 생각해 더욱 믿음이 생겼다.

“저.. 임금님, 치수는 다 재었습니다. 여기 있는 원단도 아주 훌륭한 원단이지만 저희 집 가보로 내려오는 세상에 단 하나뿐일 원단이 몇 필 있는데, 그것으로 제작을 해도 되겠습니까? 매 번 일반인들만 상대하다보니 귀한 원단을 쓸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을 때 써야 원단의 값어치도, 임금님의 품위도 더 올라갈 것으로 생각됩니다.”

임금은 자신은 세상 모든 귀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모르는 귀한 원단이 있다는 말에 그 원단이 궁금해졌다.

“짐이 모르는 원단도 있단 말인가? 대체 어떤 원단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

형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보로 내려오는 원단은 사실 옛날 이 왕국이 처음 세워질 때, 사람들의 마음을 평가하기 위해 이용되었던 원단들 중 마지막 남은 몇 필입니다.”

#4. 심판자

“ 왕국이 세워지기도 전의 이야기입니다. 그 누구도 지도자의 자격이 없었던 어두운 시기에는 사람들이 도덕심, 윤리의식, 법률의 기준 없이 마음 가는대로 살았습니다. 그 혼돈의 시절 마을에 한 이방인이 와서 정착을 했었는데, 그 이방인은 직물을 짜는 사람이었습니다. 헌데 이상한 점은 그 이방인의 직물을 누군가는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데, 다른 누군가는 대체 무엇이 보이냐며 직물을 보는 사람을 미친사람 취급하였습니다. 그 소문이 동네에 퍼지고 마을 사이에 퍼지다가 주변 마을까지 소문이 퍼졌었는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사람들이 ‘저 사람은 악한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 직물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준을 사람들이 알게되자 모두 이 천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 사람들을 분류하고 나누기 시작했죠. 그리고는 몇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왕국이 세워졌습니다. 그 후 이 왕국에서 여러가지꙼̈ 법률들이 생기고 난 뒤에도 한동안 이 천이 사회적 기준을 잡는데 기여를 했었죠. 그렇게 평화만이 계속 될 것 같던 시기에 직물을 제작하던 이방인이 죽는 일이 생겼습니다.이제 직물이 생산되지 않으므로 직물은 점점 신성이 되었고, 직물을 본다는 것 자체가 선악의 기준이 아닌 일종의 선민사상처럼 차별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본질이 흐려진 후 원래 직물을 보던 사람들도 하나 둘 사람들을 평가하고 분류를 나누며 서로 정죄를 하다보니 직물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선했던 사람들도 어떤 기준이 생기니 사람들을 미워하며 악해졌던 것이죠. 점차 사람들의 눈에서 보이지꙼̈ 않게 되던이 직물은 어느 새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다가 저희 가문의 선조에게 물려졌고, 직물을 보며 마음을 지키라는 우리 가문의 전통에 따라 우리 두 형제만이 이 직물을 보존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왕은 그런 이야기를 전설이나 민담 속에서조차 들은 적 없지만 그 직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꼭 보고싶었다. 그러면서 내색하지꙼̈ 않고 형제에게 물었다

“그런 귀한 직물을 남겨두지꙼̈ 않고 짐에게 사용해도 되겠는가?”

동생이 말했다.

“어차피 우리 형제가 죽어 없어지면 이 직물은 아무리 귀한것이라고 해도 이 세상에서 잊혀질 것입니다. 하지만 왕께서 이 직물로 옷을 입고 다닌다면 이 나라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국보로 이어질테고 왕을 시작으로 후대에 왕에 오르는 모든 왕들은 이 직물의 특성 덕분에 착하고 어진 왕들만 세워지게 될 것인데 어찌 저희의 욕심으로 숨기고만 있겠습니까”

그 말에 왕은 크게 감동했다.

“그럼 짐의 모든 것을 걸고 옷을 대대로 물려내려가도록 하지꙼̈. 자네들에게는 그에 맞는 보상을 해주도록 내 친히 이야기 해 놓겠네.”

두 형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부자들을 등처먹는게 이렇게 쉬운 줄 일찍 알지꙼̈ 못한게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5. 왕의 옷

보름이 지났다. 마냥 먹고 놀면 좋겠지만 자신들도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기에 할 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못해도 남은 보름이라도 호화롭게 살테니까.

“자 그럼 가봉을 하겠습니다. 이 거울 앞에 서시면 되겠습니다,”

임금은 내복만 입은 채 기대에 부푼 얼굴로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형이 곤란한 표정으로 쩔쩔메는 것이었다.

“문제가 있나?”

“저... 송구하오나, 잊고 계신 내복과 속옷도 벗으셔야 합니다.
원단이 생각보다 남는 부분이 있어 속옷도 만들었습니다.”

왕은 기분이 썩 좋지꙼̈ 못했으나, 거사 앞에서 자존심을 세웠다간 모든 게 틀어질 게 뻔했으니 왕은 곧 속옷까지꙼̈ 벗고 거울 앞에 섰다.

그러자 두 형제가 현란한 움직임으로 옷을 입히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가운을 걸쳐주었다.

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이 정말 마음이 악한 것인지꙼̈ 이 두 형제가 자신을 벌거벗겨 놓고 장난을 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눈에 보이지꙼̈ 않는 원단이라고 해도 손으로 집어 입힌다는 것은 몸에 스치는 느낌이라도 있어야한다는 것인데, 그런 느낌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형이 말했다.

“역시 이 원단을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주변 신하를 불러 옷을 보라고 하시지요”

왕은 아직도 자신이 벌거벗은 느낌에 주저했다.

“흠, 그.. 그래. 여봐라 딱 둘..! 둘만 들어와보거라”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관료 두 명이 들어오며 멈칫 했으나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장황한 말을 늘어놓았다.

“전하, 세상에 이렇게 멋진 옷은 제가 이 왕궁에서 일 한 이래로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백성들이 보아도 중후함에 충성심이 절로 흘러나올 것입니다.”

이미 궁중 내에 옷감에 대한 소문이 다 났었기에 혹시 자신만 옷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군중심리에 모두가 옷이 보이는 척 했다. 그러자 왕도 옷이 보이는 척 하기 시작했다.

“흠흠 그래 나도 이 앞섶을 타고 흐르는 이 라펠이 맘에 드는구만. 백성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옷이 제대로 마무리 된다면 바로 광장에 모여서 이번 일의 결과를 알려야겠구만.
자네들은 두 형제와 일정을 논의하고 축제 준비를 하게. 그 날 이 옷을 입고 나갈테니.”

두 신하는 반신반의 하며 재단실을 나갔다.
형제들은 한탄했다. 그래도 단 한 명이라도 제대로 된 말을 하겠거니 생각했는데 모두가 하나 같이 제정신이 아닌 놈이었고, 이런 놈들이 나라를 돌려먹는다고 생각하니 이 나라의 미래를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곧 자신의 일도 아닌데 상관없다며 행사 준비를 하러 회의실로 향했다. 언젠가 죽을 것 차라리 이 멍청한 나라를 상대로 돈을 뜯어내고 이웃나라로 이주할 계획이었으니까. 그것이 자신들과 상관없는게 아니었음에도 그들은 아직까지꙼̈ 비극이 코 앞까지꙼̈ 온 줄 몰랐기에 그저 남 이야기로 치부하고 말았다.

#6. 불쌍한 사람들(레 미제라블)

축제의 당일이 되었다. 모든 백성들이 광장에 모였고, 모두 그 소문의 옷을 보기위해 모여들었다. 왕의 대관식 때 모였던 것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렸다. 아마도 주변의 나라에서도 소문을 듣고 온 모양이다.

곧 왕이 나타난다는 관료의 외침에 군중들이 숨을 죽이고 모두 커다란 문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 어두운 문에서 새하얀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천사와 같은 모습인 줄 알고 탄성을 질렀으나 곧 햇빛을 온전히 받고 있는 왕의 나체를 보고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

온 우주가 멈춘 듯한 정적. 왕은 자신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에 상황파악이 안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 많은 군중 속에서 한 꼬마의 외침이 정적을 산산조각냈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그 외침에 왕은 그제서야 이 모든 상황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이의 외침에 수 많은 백성들이 일제히 웃음이 터졌고 이 무더위를 날려버릴 시원한 웃음바다 속에서 왕은 혼자 온 몸이 뜨거워졌다.

왕은 당장 왕궁으로 들어가 경호대장을 불러 그 두 형제와 재단실에 들어왔던 두 관료를 잡아오라고 했다.

그 시간 두 형제는 왕궁의 복도에서 왕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크게 만족한 뒤 왕에게 받은 보수와 짐을 챙기고 떠나려고 했다. 그 길로 바다를 건너 영국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성을 나가는 관문에서 체포당하고 말았다.

두 형제는 왕을 속이고 왕궁 내에 혼란을 야기한 죄로 그 다음 날 처형되었다. 두 관료 역시 진작에 사실을 고하지꙼̈ 않고 이 일을 키운데 한 몫을 했다는 죄로 처형되었다. 사실 숨긴건 신하 모두가 똑같았지만, 개인적인 감정으로 관료들을 죽일 수는 없으니 왕에게는 분풀이의 명분이 필요했다.

왕은 결국 품위를 지키지꙼̈ 못한 왕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세대가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법의 기준이 되었던 직물과 같이 왕국에서 도덕과 윤리의 반면교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후에 왕국에서는 이 벌거벗은 임금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허영심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것과, 힘들 때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배신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2020년 1월 12일 작성시작

2020년 2월 11일 작성완료
2021년 4월 25일 개정1판

챕터 5~6을 한 몫에 써내려갔는데 너무 급 마무리가 된 느낌이다. 원작과도 큰 다름은 없는 느낌 같기도 하고, 자신들의 불만을 자신보다 우월한 상대를 뭉갬으로부터 얻는 잘못된 감정표현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2020년 2월 11일

본문을 몇 몇 군데 다듬었다. 기본 틀은 수정하지 않았다. 작은 디테일을 추가 및 삭제했다. - 2021년 0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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