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의독서일기 #59번째

독서기간 : 2019년 11월 7일 ~ 2019년 11월 9일

<나, 너, 그리고 우리>

  우리는 친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의 생각과 나의 기분을 가까운 사람에게 강요하고 있진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하자고 했을 때, 상대가 싫다고 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나와 거리를 두는거야!" 라고 생각하며 관계를 어색하게 생각하게 된다던지. 부모가 자식에게 당연하게 말하는 것들이 사실은 자식의 생각과 기분을 배려하지 않은 채, 부모는 자식의 모든 것을 잘 알고있다는 착각으로 기분을 상하게 하고도 자식이 화내는 이유를 몰라 갈등이 계속 빚어진다던지.. 그런 것들 말이다.

  '우리'라는 표현은 '나와 친하다'라는 것이지 '나와 같다'는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라고 칭하는 관계에서 나와 같다고 생각해 나의 기분과 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로인해 친했던 관계가 깨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어떤 관계에서든 상대를 상대방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판단으로 상대를 재단하고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내가 보고 경험한 정보로 상대를 생각해야지 나의 뇌피셜로 판단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릴 것이다.


우리는 자유라는 명분 아래에 많은 의사를 표현하지만,
더러는 개인 혹 단체의 자유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잘라내고 있다.
- yellowkid


도서명 :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출판사 : 현대지성
저자 : 존 스튜어트 밀
독서기간 : 2019년 10월 16일 ~ 2019년 10월 26일

  2019년 9월 30일, 현대지성에서 시행한 '가을에는 철학을' 이벤트에 당첨되었다고 메일이 왔다. 그리고 며칠 뒤 도서가 왔고, 읽고 있던 책이 있던 터라 그 책을 다 읽고 읽는다고 시작이 좀 늦었다. 약 10일 정도 걸려서 읽었는데,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딱 중간난이도의 책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이 때의 가치관과 지금의 가치관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인간사회의 기본이 되는 '자유'의 개념에 있어서는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요즘은 자유라는 명분 아래 개개인의 자유, 소수의 자유들이 인정받아야 한다고 해서 많은 인권 관련 법들이 발의 되고 있지만, 인권이라는 이유로 모든 법안들을 다 들어주어서는 안될 일이다.

  인권에 관한 법일수록, 사상일수록, 문화일수록 더욱 더 진리와 팩트를 기초로 삼아, 과연 공익가 되지는 않는지, 소수의 세력가 되지 않는지, 사람의 존엄성생명가 되지는 않는지 분석하고 뜯어보고 다시 한 번 더 생각해서 자유의 표현을 보장해줘야 할 것이다

 

 

1. 자유의 범위
  그 누구도 이유없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 받을 수 없고, 누군가를 억압할 수 있는 권한이나 특권이 없지만, 개인의 자유가 다른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개인의 자유가 사회의 공익에 해가 된다고 할 때, 법과 여론을 통해 제재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다.

2. 지금 이 사회(대한민국 내)의 자유와 부작용
  지금 우리나라는 자유라는 명분 아래 많은 의사를 표현하고, 소수의 인권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해서 시민의식을 진보시키려 하고 실제로 진보되고 있는 듯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민의식이 올라간다고 그것이 무조건 다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 사회적으로 민감한 부분이라 언급을 할까 말까 하다가 자유와 부작용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언급해본다. 이렇다 저렇다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보다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에 ..)

  예를 들어 동성애에 관한 부분도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들을 "옹호 해줘야한다 vs 옹호 해주면 안된다"의 구조로만 알고 있고, 그 결과 거의 대다수의 인터넷 댓글에는 그저 "반대 vs 찬성"의 내용으로만 싸우고 있다. 반대는 왜 자기들네 끼리 살면 되지 왜 법까지 만들어서 보호를 받으려고 하느냐는 입장이고, 찬성의 입장은 왜 그게 찬성과 반대의 개념으로 가느냐, 인권이 사람에 의해서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있는 부분인가, 라는 주장으로 엄청 논란 중이다.

  몇 년 전부터 동성애자, 성 소수자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운동과 퍼포먼스들이 매년 대도시(서울, 대구 등)에서 일어났고, 그 결과 몇 년 사이에 동성애자들의 인구 상승률이 급증했다. 그리고 에이즈 환자들 역시 차별금지법이 거론되던 그 시점 이후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특히 10대 20대에서 가장 큰 상승률을 보였다.

  2018년 신규 에이즈 환자 1,200명 중 1,100명은 남자 동성애자 였고, 100명은 그냥 여성이었다. (이 조사는 질병관리본부에서 조사, 정리, 발표를 한 결과표다.) 이 지표로 봤을 때, 동성간의 무분별한 성행위로 인해 에이즈가 감염이 되고, 그 중 양성애자들이 여자들과 성관계를 하면서 여성에게도 옮긴다고 볼 수 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자유를 외치는 것과, 자유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법으로 보호 한다고 모든 사람들의 삶이 더 윤택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동성애를 떠나서 어떤 부분에서나 ㅡ 위에서 말했듯이 인간의 생명에 해가 되고, 사회의 문화를 어지럽히는 것은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질타를 받아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자유의 결과가 불특정 광범위한 피해라면, 그 자유는 더이상 자유가 아니라 사회적 재해가 되는 것이다.

3. 우리가 해야할 일
  그렇기에 우리는 자유라는 것을 객관적인 자료와 이성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그 자유의 본질이 무엇인지 꿰뚫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조건 인권을 위한 일이면 다 좋은게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무조건적인 제재 또한 늘 사고를 막고 사회를 윤택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과한 제재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일명 "고인물" 현상을 만들게 된다. 사회 구성원이 법의 힘에 압도 당하여 더 이상의 발전을 할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것 또한 인류의 미래를 짓밟는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항상 어떠한 문제를 두고 그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에 대한 대처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항상 고민하고 생각하며 끝 없는 수정의 반복을 통해 최적의 결과를 찾아야 할 것이다

- yellowkid
Le dimanche. 27. octobre. 2019

#거북이의독서일기 #55번째
<냉정한이타주의자 - 윌리엄 맥어스킬>

독서기간 : 2019년 10월 5일 ~ 2019년 10월 15일

 

#1. 책의 내용 중

  p16에 나오는 Jay-Z의 생명의물 이야기
유명 래퍼이자 사업가인 Jay-Z가 '제이지의 일기 : 생명의 물' 순회공연을 해서 아프리카 전역에 '플레이펌프' 4,000대를 설치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기존의 물을 긷는 행위를 '노동' 개념에서 '놀이' 개념으로 바꾸어 삶의 질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캠페인을 통해 6,000만 달러를 모금하는데 그 중에 당시 영부인이었던 로라 부시가 1,64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플레이펌프는 당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었고 그 누구도 플레이펌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아프리카 전역에 4,000대의 플레이펌프가 설치되었고 처음은 다들 환영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플레이펌프를 즐기며 물을 길어야할 아이들이 펌프를 돌리지 않기 시작하면서 물을 긷는 것을 모두 여성에게 돌아갔다. 설상가상으로 물을 긷는데 원래의 양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로 오히려 자선사업이 해가 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 사례는 실질적인 기획보다 감성에만 치우친 전형적인 사업실패의 모델이다.

#2. 내 생각

  이처럼 우리는 누군가르 도와줄 때, 행위의 주도권, 즉 사건의 중심이 누구에게 향헤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말에 그 사람이 도움을 받고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를 고민하지 않고 내가 누군가를돕는다에 초첨을 맞추어 버리니 실제 환경이나 현실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내 기준에서 상대를 도우는 시스템으로 자리잡혀 일이 제대로 되자 않는 경우가 많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게 되는 스타일이다

  예전 한 선교사님이 선교지에서 기술을 가르치는데 정말 비싼 값을 받고 기술을 가르친다는 말을 듣게 되었었는데,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곧 내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용인 즉, 공짜로 기술을 가르치게 되면 학생들의 간절함이 없어져 아쉬울 것 없다는 생각으로 수업에 임하기 때문에 돈이 필요한 선교사님의 입장이나 기술이 필요한 학생 모두에게 해가 된다는 것이다.

  교육비가 비싸도, 교육이 잘 되어있으면 간절한 마음을 가진 배울 사람은 다 알아서 배우러 오게 되어있다는 그 말이 아직 기억에 남고, 실제로도 수강료가 월급보다 비싼 강의지만 서로 배우겠다고 난리를 부린다는 말에 한 번 더 놀랐다. 그 결과 양방 모두 시너지를 일으켜 그 지역의 삶의 질이 단기간에 확 올라간 사례를 들었었다.

  이처럼 감성에 젖어 보여주기 식으로 자선사업을 진행하는 바보같은 행동보다 이성을 바탕으로 냉정한 기부,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기부를 받는 대상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기부에 임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항상 우리의 생각과 계획이 빈틈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초장부터 첫 단추를 잘못 꿰는 일은 확연하게 줄어들겠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철저하지 못하다. 그러기에 계속해서 적당히 괜찮은대로 기부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감성 우선의 기부활동은 상대를 위한 기부가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를 내세우기 위한 기부활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 기부를 하게 되면 작은 도움이라도 내 도움을 통해서 상대방이 좀 더 스스로의 삶에 주도권을 가지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기회와 환경을 마련해주는 쪽으로 기부를 하고싶다.

- yellowkid
Le dimanche. 20. octobre. 2019

학교 도서관 독서동아리 프로그램인 "다독다톡"에서 2019년 2학기 1차 도서로 Me before You를 뽑았다.

독서기간 : 2019년 9월 24일 ~ 2019년 10월 4일

#1. 존엄사란?

  몇 년 전부터 존엄사에 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다우리나라는 2017년에 존엄사가 인정되었고 2018년부터시행되었다. 존엄사란 무엇일까? 개념적 정의로는 회생이 불가능한환자에 대해 의료행위를 중단하는 것이라고 나와있는데, 여전히 사회에서는 신의 영역을 인간이 임의로 결정하고져버려서는 안된다는 의견과, 인간의 결정권이라며 남은 유족들에게 더 이상 희망고문으로 힘들게 해서는안된다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작품 속에서도 윌 트레이너(남주인공)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경추 아래를 전혀 쓰지 못하는 사지마비에 처하게 된다.원래 윌은 사회적 엘리트의 삶을 살았고 인간관계도 좋았지만 사고 이후 많은 친구들이 떠나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었기에 환자의 자살을도와주는 조력자살 병원에 입원하기로 가족들에게 말했다. 가족들은 극구 반대하다가 윌의 요청에 동의는했지만, 혹시라도 마음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간병인인 루이자(여주인공)을 고용해서 하루의 대부분을 윌과 함께 지내도록 한다. 그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다른 입장 때문에 다투던 마음들이 점차 사랑이란 감정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참 흥미롭다

#2. 신의영역, 인간의 결정권

존엄사는 과연 인간이 스스로 결정해도 되는 것일까. 과거와비교하면 정말 정 반대의 삶으로 추락해버린 윌을 생각하면, 나 같아도 살 의지가 없어질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치부를 다 보여줘야 하고, 스스로는 말하는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생명을 단축 시키려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하다.

하지만 또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존엄사를 당연하게생각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생명경시 현상이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너무 합리적으로만 생각해 금방생명을 포기해버리진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 든다. 작중에서는 루이자로 인해 윌이 정말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많은 것을 하며 행복도 느끼기에 존엄사에관한 결정은 함부로, 쉽게 결정해서는 안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3. 생명에대해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

우리 중 삶과 죽음에 관하여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또 얼마나 자주 고민하고 생각할까. 태어남과 죽음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결정할 수 없는부분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언제 우리 눈 앞에 죽음이 나타날 지 모르는일인데 우리는 “아직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삶의뒷 편으로 던져놓지는 않는가.

삶 속에서 가끔씩은 생명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을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하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재난 영화하면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무엇일까?
쓰나미? 폭설? 지진? 전염병? 좀비? 난 그 무엇보다 사람들 간의 "감정싸움""의견대립"이라고 생각한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 대중이 내 말을 따라주면 얼마나 고맙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아니 사람들은 그렇게 쉽지 않다. 이 영화에는 단순한 의견대립만 넣은 것이 아니라 의견대립을 극대화 시키는 한 가지를 넣었는데, 바로 "신앙"이다. 편의점이라는 한정적인 공간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불안에 떨고 있는데, 한 중년 여성이 계속해서 성경 구절을 읊는다.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보는 것을 추천한다. 신앙은 좋은 것이지만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적재적소에 사용하지 못하면 옆에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나 큰 원기옥고구마를 먹게 되는지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1. 재난시 사람들의 유형

  불가항력적인 재난이 찾아왔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생존에 필요한 의약품과 식료품을 먼저 챙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족이나 연인을 먼저 찾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반응들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뿐 아니라, 게임속에서도 일어서도 일어난 적이 있는데, 정말 흥미로운 사건이다.
  B사의 W게임에서 발생한 "오염된 피 사건"은 2005년 9월 13일 게임 내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인해 가상 전염병이 퍼진 사건이다. 이 오염된 피는 게임 내 새로운 던전의 보스가 플레이어를 공격했을 때, 지속적으로 체력이 감소하고 주변의 플레이어들에게 전염이 되어 주변 플레이어 모두가 전염에 걸리는 "오염된 피"라는 기술 때문에 발생했다.

<게임 내 대도시 중 하나인 아이언포지. 플레이어는 물론 심지어 NPC까지 전염되었다.>

  던전 내에서 소환된 플레이어의 소환수가 오염된 피에 감염된 채로 소환해제하고, 마을에서 다시 펫을 소환 했을 때, 스킬이 유지된 채로 소환수가 소환이 되어, 주변의 플레이어와 심지어 NPC에게까지 전염이 되어 그 마을에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전염이 되었다. 죽어서 다시 살아나도 그 사이 다른 사람들이 전염이 되었기 때문에 또 죽고, 또 죽고, 마을에는 시체들이 쌓여만 가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여러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이 죽기 전에 자신의 마나를 사용하여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사람. 전염을 저지시키기 위해 감염자들을 한 곳으로 격리시키려 안내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지 않으려 구석에서 혼자 죽는 사람. 이런 훈훈한 광경 속에서 먹으면 전염병이 풀린다는 "가짜 면역약"을 거금에 파는 사기꾼들도 있었다. 결국 게임사에서 서버 리셋과 빠른 패치로 사태는 수습했었지만, 이런 사건들이 너무 유명해져서 행동심리를 연구하는 대학들이 이 사건을 두고 여러가지 연구를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영화 <미스트>에서도 많은 유형들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안개가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한 이후,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사람, 다른 대안을 찾으러 가는 사람,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물증이 없이는 믿지 못하는 사람, 물증을 보러 가자고 해도 자신을 놀린다며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하며 회개하는 사람 등 많은 유형의 사람이 나오는데, 보는 내내 답답하면서도 내가 실제로 저 곳에 있다고 생각하니 충분히 또 이해는 되는 상황이라 한 명 한 명에게 더욱 몰입이 되었던 것 같다.

#2. 리더십의 중요성

  영화를 보다 문득 리더십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리더라는 자리는 그 사람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아무래도 자리라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에 특히나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한 상태에서는 말 한마디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고, 자칫하다가 구성원 모두가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배의 잘못된 선장, 서론에서 이야기 했던 그 신앙심 있는 중년의 여자가 초반부터 눈에 거슬리더니 결국 사고를 쳤다.

윙 가르디움 레비오웃싸- 는 아니고...

  혼돈의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판단력을 잃어가고, 하나로 일관된 주장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 하나 둘 그녀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그런 말에도 신봉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신봉자들은 안개로부터 탈출할 계획을 짜는 것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그냥 당장의 심적위안만을 찾게 된다. 전형적인 사이비, 다단계 등 사람을 세뇌하여 소수의 욕망을 채우는 그런 단체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무능하지만 말하길 좋아하는 리더, 혹은 겉은 거창하고 화려하지만 결국 논점은 없는 그런 단체를 만나게 되면 우리도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겠구나.. 싶었다.

  내가 잘못된 리더가 되지 않기 위해, 아니면 내가 잘못된 리더 아래에 있지 않기 위해, 늘 생각하고 고뇌하고 비판적사고를 키우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3. 말주변이 없어 급조된 마무리

  더 이상은 말할 것도 없고 말하면 영화를 볼 맛이 안 날 것 같아서, 영화이야기는 여기서 끝낸다.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믿고 있는 것이 무조건 맞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보는 것이 무조건 맞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
  나도 종교가 있다. 나도 종교가 있기에 종교를 부정하자는 말은 아니고, 누구나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삶 속에서 낯선 것과 부딪히는 순간에 과연 "내가 보는 것을 색안경을 벗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결국 사람은 자신의 생각대로 살테니까.

  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또 물어보고, 끝까지 질문하는 삶을 살아보자. 어릴 때 그렇게 왜? 라는 질문을 하면서 어른이 되어서는 왜 질문하는 것을 멈추는가. 왜? 라는 질문은 질문하는 사람과, 답변하는 사람,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에 늘 좋은 안내자가 될 것이다.

<돈키호테 - 미겔 데 세르반데스>

독서기간 : 2019년 8월 8일 ~ 2019년 8월 25일



1. 중요 문장(필사)

p336. 돈키호테 : "산초야 희극이란 인간의 삶의 행동들을 생동감 있게 비춰주는 거울이다. 그리고 배우들은 우리 모습을 가장 잘 비유해서 나타내 주지. 제각기 다른 사람들의 역할을 이행하기 때문에 어떤 이는 황제고, 어떤 이는 교황이며, 어떤 이는 포주고, 다른 이는 군인이며, 또 다른 이는 상인이란다. 그리고 그 공연이 끝나면 모두 옷을 벗고 똑같아지지. 그것처럼 생을 마감할 때면 죽음이 우리의 옷을 전부 벗기고, 우리는 무덤 안에서 모두 똑같아지지."

p380. 코르추엘로 : "세상의 모둔 석사 학위보다 실천이 더 값어치 있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말에서 내려라. 당장 네게 증명해 보여주지"

p523. 산초 : "죽음이 아닌 모든 것에는 다 해결책이 있지요. 영주는 마을의 이장보다 더 높으니 어디 한번 덤벼 보라지요.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똑똑히 보게 될 테니 말입니다. 양털을 탐내서 왔다가 오히려 털이 깎여서 돌아갈 것입니다."

p627. 돈키호테 : "산초야, 자유란 하늘이 인간에게 준 가장 소중한 선물들 중 하나란다. 땅에 뒤덮여 있고 바다에 숨겨져 있는 모든 보물들보다 더 값지지. 자유만이 아니라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인생을 걸어도 될 것이고 또 걸어야만 하겠지. 반대로 포로가 된다는 건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심한 불행이다. 산초야. 내가 이것을 얘기하는 것은 탁트인 들판에 자유롭게 있는 것이 공작 부부의 집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것보다 더 즐겁기 때문이다."

p681. 돈키호테 : (생략) 하지만 나는 자기 스스로가 운명의 창조자라고 생각한다 (생략)

p713. 산초 : 이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은 그냥 사는 것을 포기하고 죽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무것도 아닌 우울증의 손아귀에서 말입니다.

 


2. 필사한 문장에 대한 내 생각
    -> 지금 보니 전체적으로 삶에 대한 지표 같은 것에 하이라이트를 많이 쳤다.
자유, 분명 좋은 것이다. 하지만 온전히 자유를 누릴 수는 없고, 자유를 위해서 내 삶의 한 부분을 희생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결단과 실천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실천력은 나에게 딱 필요한 부분인데, 몸으로 행하기가 너무 어렵다. 태생이 느긋한 성격이고, 몸은 또 상황에 금방 적응해서 금방 루즈해지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어, 머리론 이러면 안되는 걸 알아도 몸이 안 따라줘 생각과 몸 사이의 갭의 차이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머리는 정말 온갖 플랜을 세우며 이미 실행에 옮긴지 오래지만, 몸은 아직 시작도 안한 경우가 많다. 이 모습을 보고 제목을 <도전과 안주, 그 사이 어딘가에서>라고 지었다.

  이런 나에게 코르추엘로의 대사와 돈키호테의 627페이지 대사는 조금이나마 내 생각을 일깨워 주는 대사가 되었다.

 

3. 책을 읽으며 떠오른 질문
    -> 이상을 좇는 돈키호테, 현실에 안주하는 산초. 나는 어느 쪽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고, 내가 작 중 인물이라면 (돈키호테 쪽이든, 산초 쪽이든) 어떻게 행동했을까 싶기도 했다. 서로 상반된 인물이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위험에 빠졌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내가 돈키호테였다면 중간에 자신의 목표(둘시네아라는 여인을 만나는 일생일대의 목표)를 그만두진 않았을까. 내가 산초였다면 중간에 주인을 배신하고 돌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여러모로 두 인물 다 근성은 알아줘야 하는 것 같다. 내용을 되새기며 글을 쓰는 지금, 나도 두 인물을 본받아 힘들고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다.


4. 책의 핵심 내용 요약정리
    -> 자신의 꿈을 이루려 먼 길을 떠나는 이상주의자와 그 이상주의자가 약속한 재물과 명예를 얻으려 고생길에 오른 계산적인 현실주의자의 바보같으면서도 사람 놀래키는 모험 이야기


5. 책을 읽고 깨달은 것. 얻은 것
    ->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그래도 천재는 아니더라도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일수도 있고, 실제로 착각일 경우 발목을 아주 제대로 잡기에,,,,,,,, 스스로 만족하지 말고 끊임없이 사고능력과 정보를 업그레이드 시켜나가야 하는 것을 배웠다.

7. 실천항목
    -> 헷갈리는 것은 일단 실천에 옮기고 보자. 어떤 사건이 생겨야 피드백도 생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주판놀이만 하면 변화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세상 모든 것은 영원할 것처럼 존재하지만
언젠가는 모두 없어질 운명이다.

세상 모든 것이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 변화하지만
그 변화의 마지막은 언제나 무(無)다.

삶에 대해 한 번 쯤은 깊게,
깊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 yellowkid


  인생에서 기약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것이 2가지 있다. 바로 태어남과 죽음이다. 이 두가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다. 게다가 이놈들은 우리 마음처럼 이랬다 저랬다 해서 안올거라고 하다가 갑자기 현관 벨을 누르거나 온다고 했다가 잠수를 타거나 그러진 않는다.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태어남과 죽음 뿐이다. 우리는 언젠가 이 세상에 태어났고 똑같이 언젠가 이 세상에서 떠난다. 그럼 우리는 이 불편한 두 친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1. 좋은 죽음? vs 안 좋은 죽음?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 때는 정말로 죽음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할 지 고민해보기도 했다. 병동 침대에 앉아서 지인들에게 전할 편지를 쓰고, 햇살이 내리쬐는 화창한 주말 오후에 병실 창문을 열어놓고 바람을 맞으며 지난 시간들을 회고 한다는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낙지탕탕이가 될 그런 생각도 해봤다. 그런게 좋은 죽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죽음 자체를 맞이하는 것보다 죽음 뒤의 상황을 생각하며 죽음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몇 년 전 일기를 쓰다가 생각노트까지 쓰게 된 이유가 노년에 접어들어서 지금의 내 삶을 돌아보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내 삶의 기록을 후대에까지 남기고 싶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역사 속 많은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도 그렇게 명예에 집착하고 가문에 집착했던게 자신이 없는 후대에도 사람들이 자신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지 않았는가. 나 역시 볼품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나 역시 인간이기에 몸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아도 기록으로 후세에까지 내 삶을 연장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글을 적다보니 내가 생각하는 좋은 죽음은 아마 "나의 지난 삶을 이 세상에 잘 남기고 자리를 비우는 것"인 것 같다. 그에 반해 안 좋은 죽음은 갑작스런 죽음으로 내 삶을 정리하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뜰 때, 라고 생각한다. 그런 죽음이야말로 가장 미련이 많이 남는 죽음일 것 같다. 

 

2. 좋은 삶? vs 안 좋은 삶?

  삶은 어떨까.  난 평소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막연하게 누군가를 도와준다기보다 나의 도움과 상대의 노력을 통해 서로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 생각을 버리진 못했다. 실천하기엔 아직 나부터 준비해야 할 게 너무 많다.

  뭐 꼭 사회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안 좋은 삶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각자의 기준이 다르고 가치가 다른 것이니까. 하지만 기왕이면 돈 많이 번다고 나만 잘먹고 나만 잘 살자 같은 마인드로는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3.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

  먼저 변하지 않는 것이 태어남과 죽음이라고 말했다. 태어남은 벌써 시작되었고, 남은 건 죽음이다. 이 남은 친구를 잘 대해야 하는데, 이 친구는 여전히 제 멋대로라서 언젠가 연락도 없이 불쑥 우리 눈 앞에 찾아올 것이다. 

  어차피 사람은 죽는다는 말에 누군가는 "어차피 죽을 거니까, 혹은 한 번 뿐인 인생 내 맘대로 살자"고 말한다. 힘든 것 피하고, 귀찮은 것 피하고 그냥 하고싶은대로 다 하고 산다는 사람도 더러 있다. 이런 생각은 정말 자기 삶을 무책임 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한 번 뿐인 인생이니까 더 뜻깊고 의미있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죽고 난 뒤에 이 세상을 이어나갈 사람들을 위해 살아있을 때 많은 것을 공부하고 배워서 선한 영향력으로 사람들을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 2019. 08. 13 PM 11:03
잠들기 전 책상에서 PC로

#거북이의독서일기 #45번째

독서기간 : 2019년 8월 4일 ~ 2019년 8월 8일


상대방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바로 센스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센스가 있다고, 혹은 센스가 넘쳐 흐른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센스가 좋은 사람 일부를 제외하고는 다 자신을 과대평가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정말 별 것 없어보이고, 이걸 누가 모르나 하는 것들이 많지만, 정작 책을 읽어보면 지난 시간 내가 해왔던 행동들이 떠오르며 난 센스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오만한 생각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반성 많이 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난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는 것 같다가도 텐션이 오르면 언젠가 내가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떠들기에 바빴다.

얼마전에도 간만에 친구를 만나 놀다보니 텐션이 올라 혼자 저세상텐션으로 떠들어서 친구의 기분이 심각하게 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이후로 며칠동안 그 친구가 화난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책을 보고 내가 너무 심했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말재주와 말센스는 다르다 말이 확 와닿는 순간이었다.

이번엔 친구에게 책을 빌려서 읽었는데 나중에 따로 책 사서 가끔 생각날 때마다 읽어야겠다. 끝

 

ps. 마지막 16챕터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고 안타까운 일은 사과하는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과는 빠를수록 좋다"

배우로서의 하정우, 영화 감독으로서의 하정우, 화가로서의 하정우, 요리하는 사람으로서의 하정우, 걷는 사람 하정우.. 정말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이 많은 것을 해내는 원동력은 '걷기'이다.

오히려 힘을 뺏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걷는 여유' 덕분에 많은 것을 해낼만한 힘을 얻는 것 같다.

p48.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의미'라는 것을 찾으면서 포기하려고 했을까? 우리가 어렴풋하게 찾아 헤맨건 '이 길의 의미'가 아니라 ' 포기해도 되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이 책은 걷는 것을 통해 포기하지 않는 '거북이의 정신'을 배웠다고 말한다. 나도 '해야하지만 하기 귀찮은 것'을 정해서 임계점은 넘는 '작은 성공'을 체험하여 절대 포기하지 않는 거북이가 되어야겠다.

"거북이는 느리지만 완주하는 법을 안다"

ps. 거북이 어쩌고 하는 말은 책에 안나온다. 그냥 내가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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