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명당에서 하루종일 상주하는 흥부. 돈은 없으면서 매일 술에 찌들어 있다. 종종 바둑내기로 돈을 따려 하지만 그 마저도 로또 구입비로 다 써버린다
“복권 20장 주시오”
남자는 무심하게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복권을 달라고 했다.
"거 흥사장님은 그냥 여기로 출근을 하시네 그려"
"에헤이, 쓸데없는 말 말고 복권이나 주시오"
흥부라는 남자는 매일 오는지꙼̈ 사장이 매일 온다는 말도 이젠 귀찮다는 듯 무신경하게 복권만 달라고 했다.
-띵똥-
”여~ 박 사장~ 오늘은 복권 운이 좀 있으려나?? 나 5장만 주시오”
친화력이 좋아보이는 영감이 들어왔다. 한 팔에는 얇은 바둑판을 끼고, 다른 한 손에는 바둑알통을 들고 들어오며 곧장 마루에 앉았다. 박 사장이라는 점주는 반기지도 않으며 복권 5장을 내주었고, 짜증난다는 듯 크게 말로는 못 내뱉고 입만 중얼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바둑 영감은 오늘도 아침 일찍 출근해서 친구와 바둑을 두며 하루 종일 놀다가 돌아갈 판으로 보인다.
명당 중에 명당이라는 복권 명당이라 이른 아침부터 복권판매점에는 이런 저런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바둑 영감은 오기로 한 친구가 영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지꙼̈, 옆에 있던 흥부에게 내기바둑을 하자고 하였다. 흥부는 말 많은 영감이 귀찮았지만 오늘은 영감을 벗겨먹고 복권을 더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내기에 수락했다. 어느 새 시간이 흘러 복권판매점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언제부터인지꙼̈ 이 복권판매점에는 복권 사는 사람이 절반이고 바둑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절반이나 되었는데 아마도 이 바둑귀신 같은 영감이 매일 오는 탓에 자연스레 바둑 두는 사람들까지꙼̈ 몰리게 되었으리라. 처음 점주도 바둑 두지꙼̈ 말라고 말렸으나 사람들이 바둑 구경을 하면서 복권도 사니 일종의 마케팅이 된 셈이었다.
흥부도 어릴 적 집에서 아버지나 손님들이 드나들며 바둑을 두는 것을 보았고 아버지에게 바둑을 잠시 배운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바둑 실력이 좋으셔서 코치를 받았던 적이 있는지라 손을 뗀 지꙼̈ 오래지만 초보를 상대하기엔 무리가 없는 실력이었다.
“내가 졌네”
바둑 영감이 패배를 선언했다.
“고맙습니다. 영감님. 복권 잘 사고 당첨되면 한 턱 내겠습니다“
지켜질 일 없는 약속을 한 흥부는 내기에서 딴 돈을 전부 복권을 사는데 써버렸다. 바둑영감이 매일 바둑을 두러 오지만 소질이 크게 없는건지꙼̈, 돈 많고 내기 좋아하는 초보인건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흥부는 그저 내기에서 이겨 복권을 더 사고 오늘 끼니만 때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도 가족보다는 복권이 우선인 한심한 가장. 흥부는 그런 가장이었다.
“오!! 그렇지꙼̈!!”
몇 시간이 흐른 지도 모를 때. 앞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을 만큼 시끌시끌한 복권판매소에서 누군가 외치는 한 마디에 순간적으로 조용해지며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뭐여? 된거여?“
“몇 등인데? 이번 주 얼마여 얼마”
분위기로 봐서 그 동안 한 번도 당첨되지꙼̈ 않았던 최 씨 아저씨가 당첨이 된 듯 하다.
“3등이여 3등! 이때까지꙼̈ 부은 돈 절반은 회수할 수 있다고~! 오늘 막걸리는 내가 한 바퀴 돌릴테니까 마음껏 드시고 가쇼들! 나는 환전하러 가볼테니께"
막걸리를 쏜다는 최 씨 아저씨의 말에 판매점 안은 환소성이 터졌다.
그 신나는 분위기 속에 속 끓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흥부였다.
8년 전..
흥부는 제비가 물어다 준 박에 보물이 있었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도 부자가 될 것을 기대해 밥도 굶어가며 박 타는 날을 기다렸지만 결국 안에는 썩어 빠진 오물만 잔뜩 있었던 이력이 있다.
https://yellowkid.tistory.com/entry/%ED%9D%A5%EB%B6%80%EC%99%80-%EB%86%80%EB%B6%80-1
그리고 2년 전에는 복권 2등에 당첨되어 가난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갑작스러운 큰 복은 오히려 재앙이라고 했던가. 그동안 고생한 시간이 억울해 보상 받겠다며 흥청망청 놀아 시드 머니로 굴릴 돈을 다 날려버렸었다.
형인 놀부도 동생 흥부가 한심하고 미웠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돈 없이 고생했으니 곧 열심히 살 것이라 생각했고. 그 기대가 박살나버린 참담한 결과를 보고는 다시 연락 하지 말라고 연을 끊어버렸다.
처음 2등에 당첨되었을 때는 형에게 기반을 다진 모습을 보여 주겠다던 흥부였으나, 그게 될 인물이었으면 10년 전 결혼을 결심했던 그 날부터 아내에게 고된 일을 시키고 자신은 백수처럼 집에만 박혀 지내는 일 따윈 없었을 것이다
흥부는 환소성 속에서 같이 즐기지 못하고 점주가 내어주는 막걸리 한 사발만 단 번에 들이키며 ‘나는 운이 없는 사람이다. 운이 없어서 이런거야.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라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렇게 분하면서도 공짜 막걸리는 얻어 마시는 양심도 자존심도 없는 사람. 흥부는 그런 사람이었다.
언젠가 1등이 되면 그 때는 정말 가족과 남 부러울 것 없이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흥부였지만, 절대로 자신이 성실하게 일하며 가정을 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남들이 평생에 걸쳐 1번 될까 말까한 천운에 가족의 여생까지꙼̈ 걸어버리는 사람. 흥부는 그럼 사람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는 맞는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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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토 - 1차 작성. 전작 이었던 흥부와 놀부의 10년 뒤 이야기다. 1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흥부는 아내를 일터로 몰아넣고 자신은 한 탕만 생각한다.
#단편선 #흥부와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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