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익빈 부익부, 태생부터 게으른 자들에 대하여"

#1. 놀부와 흥부, 형 그리고 동생

놀부는 놀기 좋아하고 욕심도 많았다. 집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다소 거칠 때도 있었지만 외향적인 성격의 놀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놀부를 싫어하고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놀부는 성격상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까지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흥부는 놀부와는 달리 조용하고 섬세한 면이 있었으며 다소 소심한 편이라 밖에 나가서 노는 것보다 집에 있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어릴 때 주로 어른들과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그 덕분인지 작은 일에도 어른들의 넘치는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랐다. 
사춘기가 시작될 쯤, 놀부는 흥부를 바라보다 문득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철부지 같은 흥부가 과연 스스로 이 세상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부모님은 언제까지 건강하실까? 고민이 이 정도까지 이어지자 놀부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사랑만 받고 큰 흥부가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지 의문이 들었으니 자신이 열심히 공부해서 부모님과 흥부를 부양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놀부는 맞이라는 부담감을 짊어지며 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흥부는 놀부의 이런 생각을 알았을까, 사춘기에 접어들며 조금만 것에도 과한 관심을 가지는 어른들의 시선이 고맙기도 했지만 왜 자신에게는 따끔한 소리 한 번 안하고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는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자신의 게으름이 마치 어른들의 탓인 것처럼.. 그리고 자신과 점점 격차가 벌어진다고 느껴지는 형의 존재도 은근히 비교의식을 갖기 충분했기에 사춘기의 예민한 감수성은 쥐를 쥐덫으로 유인하듯 흥부를 일탈로 이끌었다. 

성인이 될 무렵, 놀부는 성균관에 가게 되었다. 한창 놀고 싶은 나이에 놀기를 거부하고 공부만 했는데, 이젠 한창 꽃피울 시기에 또 공부를 하며 청춘과 중년기를 맞바꾸었다. 지금의 절제가 나중의 희망이 되길 바라며, 
반면 흥부는 슬슬 집에 있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야 시도 때도 없이 놀아도 어린아이는 놀면서 크는 거라며 어른들이 좋아했지만, 사춘기시절 공부의 시기를 놓치고 어른이 되어버렸더니 친구들 사이에서 경쟁력이 없어 한참 뒤쳐졌기 때문이었다. 공부하는 습관이 들지 않은 흥부는 늦게나마 공부를 시작하기보다 이미 늦었다고 말하며 불편한 시선들을 피해 집 밖에 나가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그러다 어느 날 옆 고을에서 열리는 큰 장터에 나갔다가 한 여인을 만났는데, 결혼을 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지만 뒤떨어지는 외모는 아니었기에 몇 번의 구애 끝에 어린 나이에 결혼에 성공했다. 

처가 댁에서는 처음엔 아무것도 없는 흥부를 반대했지만 곧 놀부가 성균관에 진학했고 그 이유가 가족의 부양이라는 이유를 알게 되자 한 숟가락 얹어볼 심산으로 승낙을 했다고 한다. 

몇 년 후, 나라에 큰 기근이 와서 모두가 힘들어 할 때, 각 고을의 몇 몇 대감들은 그래도 넉넉한 재산이 있었는데, 대감들은 먹거리를 구하러 온 사람들에게 밭일, 수선, 가사 등을 시키고 그 대가로 쌀과 반찬 등을 주며 서로 살아나갈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그 대감들 중에 놀부도 있었는데 사람을 쓰는 데는 대감들 중에서 놀부가 가장 까다롭기로 소문이 났다, 간단한 일도 아무나 쓰지 않았다. 그리고 놀부는 다른 대감들과는 달리 정말 공부에 간절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오롯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 기준이 까다로워 쉽게 놀부의 지원을 받을 수는 없었다. 모두가 힘들다고 모두를 도와줄 수 없는 실정이니, 간절한 사람들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보고 인재로 커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따져야 했다. 
흥부는 결혼을 하고 몇 년이 지날 동안에 그렇다 할 일은 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다 보니 아이만 계속 낳게 되었는데, 그 마음 속 한 켠에는 아마 형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 기대를 가지고 놀부에게 찾아가 밥 동냥을 했더니 그 오랜 시간 고생하며 살아온 놀부는 스스로의 삶에 책임감 없이 사는 놈에게는 콩 한 톨도 못 준다며 문전박대를 했다. 
놀부는 정말 화가 났다. 자신이 그렇게 노력하는 걸 보면 흥부가 비록 어렸을 시절 철부지였다 해도 자극을 받아 열심히 살 줄 알았건만 결혼까지 해서 가정을 이끌어야 할 가장이란 놈이 고작 한다는 게 형 앞에 찾아와 밥 동냥을 하다니. 한 때 가족을 부양하려고 청춘을 포기하고 공부에만 몰두한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흥부에게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건 흥부가 노력해도 안될 때 아낌없이 지원해주겠다는 것이었지 아무 노력도 없이 비굴하게 밥이나 동냥하러 오는 동생에겐 정말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가 없었다. 
차라리 자신에게 일을 시켜달라고, 가족들 굶어 죽지 않게만 해달라고 말을 했으면 정말 일만 시켰을까, 놀부는 흥부의 근성 없는 모습이 너무나도 보기 싫었다. 
흥부는 형이 무서워 형수님께 갔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놀부를 찾아갔을 때와 다른 점이 두 가지 있다면 형수님이 밥주걱으로 따귀를 쳤다는 것과, 그 주걱에 밥풀이 묻어있어 뺨에 묻은 밥 덩어리를 먹을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흥부는 그 밥 덩어리를 손에 쥐더니 고민도 없이 입 속에 털어 넣어 버렸다. 흥부는 결국 가정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사람,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는 맞는 사람이었다. 
 
 
 
#2. 귀한 손님, 제비

흥부가 아침 일찍 마당에 나갔던 날, 마당에는 다리를 다친 제비가 있었다. 흥부는 제비를 잡아 잡아먹으려 했으나, 아내가 제비는 귀한 손님을 상징하는 새가 아니냐며 다리를 고쳐주고 돌려보내자고 했다. 흥부는 배고픈데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고 몰아세웠지만 아무 말 없이 빤히 쳐다보는 아내의 눈빛에 곧 아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아내는 제비의 다리를 고쳐주며 놀부에게 말했다. 우리는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아이들의 마음까지 가난하게 키우고 싶진 않다고. 
흥부는 듣기 싫은 듯 방문을 쾅 닫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제비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져 갈 무렵, 마당에 건강한 제비가 있었는데 다리에 흰 천을 감고 있었다. 흥부 아내가 제비를 확인하려 가까이 다가가자 제비는 푸드득 날아가버렸는데 그 자리에 무슨 박 씨 같은 것이 있었다. 흥부와 아내는 제비가 저번의 은혜를 갚으려고 씨앗을 주고 갔다고 생각했다. 밭이 없는 둘은 박씨를 마당에 심었다. 이 박이 자라기만 하면 그래도 며칠은 배를 채울 수 있을 테니 기쁜 마음으로 씨앗을 심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았다. 제비를 도와준 가난한 사람이 제비가 가져다 준 씨앗을 심었다가 부자가 된 이야기를. 흥부는 지금 상황이 딱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모든 정황들이 자신의 이야기와 맞아떨어진다며 분명 이 박 속에는 보물이 들어있을 것이며, 박을 계속 키우면 박이 자라며 박 안의 보물도 점점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박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더니 박의 수도 많아지고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흥부는 신이 났다. 비록 매일 배가 고픈 삶을 살았지만 곧 고생이 끝나고 부자가 되어 문전박대 했던 형에게 찾아가 보란 듯이 나타나 복수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며칠을 박만 바라보던 날 흥부의 아내는 이제 그만 박을 타고 보물로 먹거리를 사서 밥을 먹던지, 보물이 없으면 박이라도 먹고 허기를 때우던지 하자고 했다. 그러자 흥부는 노발대발하며 더 큰 보물을 얻을 수 있는데 무슨 말을 하냐며 가족 앞에서 처음으로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게거품을 물었다. 
그렇게 박만 바라본 지 한 달이 되던 날. 수확시기를 놓친 박이 하나 둘 썩어 문드러지며 갈라졌는데, 그 안에는 보물은 커녕 상할 대로 상한 썩어버린 박만 있었을 뿐이었다. 

흥부는 자신이 노력하여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지 않고, 일확천금을 노려 손 쉽게 고난을 피하려는 소인배,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는 맞는 그런 사람이었다. 


- 2019. 07. 09. 소재 찾음
- 2019. 12. 11. 1차 완성
- 2021. 04. 27. 오/탈자 확인 및 문장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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