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저건 보나마나 신포도지 뭐. 신포도 주제에 뭐가 그렇게 오래 매달려 있으려고 저 높이 매달려 있는지 모르겠네. 어차피 아무도 먹지도 않을텐데"
 

방구석 평론가

 
  마을에 포도 맛이 좋기로 소문난 농장이 있었다. 대체 누가 먹는지 본 적 없지만 여우는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들은 그 포도농장이었다.
  자신은 꿈에서나 먹어볼 법한 포도였기에 언젠가 어른이 되어 돈을 많이 벌면 저 포도를 먹어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은 집에서 일 인분의 양도 감당하지꙼̈ 못하는 식충이.  여우모피를 쓴 여우고기에 불과했다.
  여우는 그 포도가 싫었다. 한 때 삶의 목표로 삼았던 포도가 이젠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그깟 포도 하나 못 사먹는 여우로 만들어버린게 저 재수없는 보랏빛 포도라고 생각했다.

  “저까짓 포도 누가 돈 주고 사먹냐, 그냥 몇 알 훔쳐먹으면 다신 안 먹을 포도인데. 동네도 조용하겠다 한 송이만 맛봐야겠다”
  무적의 논리로 서리를 다짐한 여우가 긴 막대로 허공을 휘저었다. 운동이라곤 평생 하지도 않은 여우가 긴 막대 끝에 걸리는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감당은 커녕 일자로 들고 가만히 서있는 것도 힘들었다. 그렇게 몇 번 휘젓다가 체력이 바닥난 여우는 막대를 버리고 돌을 주웠다.
  돌을 포도송이를 향해 던졌지만 근처도 가지꙼̈ 못했다.
  한참동안 궁리를 하던 여우는 누군가 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옆 동네에 머리가 좋다고 소문난 까마귀였다. 그 까마귀는 포도나무 꼭대기에 앉아 포도를 쪼아먹기 시작했다. 여우는 까마귀에게 부리로 가지를 쪼아서 한 송이만 떨어뜨려 달라고 부탁했으나 까마귀는 서리도 능력이 되고 머리가 좋아야 하는거라며 여우를 놀려댔다. 여우는 저 꼴뵈기 싫은 까마귀 놈을 언젠가 고기반찬으로 만들어버리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몇 시간동안 고민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도 목표로 삼은 포도 한 송이는 커녕 한 알도 못 떨어뜨린 여우는 씩씩거리며 애꿎은 포도에게 탓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우는 생각했다.

"쳇, 저건 보나마나 신포도지 뭐. 신포도 주제에 뭐가 그렇게 오래 매달려 있으려고 저 높이 매달려 있는지 모르겠네. 어차피 아무도 먹지도 않을텐데" 
"왜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거지? 왜 내가 하려고만 하면 주변에 방해하는 것들이 많냔 말야. 이 세상에는 정말 도움되는 것들이 하나도 없어. 아까 그 까마귀놈도 똑같애. 지도 서리하는 주제에 그깟 포도 한 송이 좀 떨어뜨려주면 부리라도 부러져?"
 세상에 대한 불만을 숲 속 동물 모두가 들리도록 내뱉지도 못하고 코 앞에서만 중얼중얼댄 여우는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다.
 
  "여우야, 어디 다녀오니? 밥 먹을래?"
  "아니요. 먹고 왔어요"
 
엄마 여우의 질문에 건조하게 말한 여우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타닥 타닥’
  여우는 숲 속 커뮤니티에 “ 야 우리마을에서 전국에서 부자들만 사먹는 @@포도 한 송이 선물받아서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맛있는 포도는 아니더라. 자연산 A- 정도? SS급이라고 생각한 동물 있으면 사먹지꙼̈ 마라…. 그 돈이면….”라고 글을 쓰며 “쉰포도.. 먹었으면 오늘 묫자리 알아봤을듯…”하며 중얼댔다.
 
  - 똑똑
 
  "여우야 뭐하고 있니? 포도먹고 하렴"
 
  무심한 척 포도접시를 받아든 여우는 어머니가 방에서 나가고서야 웃으며 "역시 집에서 먹는 포도가 최고지"라며 만족한 표정으로 포도를 먹었다.
 
  힘들게 노력해야 먹을 수 있는 자연산 포도를 얻지 못한 자신의 능력을 개선하기 보다 신포도라며 포도탓을 하는 여우의 모습. 그저 편하게 얻을 수 있고 무난한 맛에 만족할 수 있는 하우스 포도로 적당히 만족하며 현재에 안주하는 여우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2019. 5월 - 1차 작성
2024. 04. 29 수정1 - 방구석 철학자들에서 방구석 평론가로 부제목을 바꾸었다. 배경스토리를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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