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형은 자신의 재산을 다 털어 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지푸라기 집에 살았다.

작은 형은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털어 막내 동생에게 주었고 흙으로 지은 집에 살았다.

막내는 형들에게 받은 재산으로 벽돌집을 지어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 가족, 돈에 대하여"


우리 삼형제는 너희가 동화책을 읽던 그 시절에 부모 아래에서 독립하여 자신만의 성향대로 살고 있었어.

그런데,  남 이야기 떠들기 좋아하는 형편없는 작자가 우리의 삶을 관찰하더니 곧 온 동네에 가서 떠들기 시작했고 기어코 외국까지 나가서 우리 이야기를 떠들어 대는 것이었어.

내용인 즉 첫째는 게을러 지푸라기 집에 살고, 둘째는 그나마 좀 나아서 진흙 집에 살고 셋째만이 부지런하여 벽돌집에 산다는 그런 이야기였지.

그런데 그 이야기가 뭐가 재미있는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어. 중요한 건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었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저 사람들의 관심만 중요하게 생각한 작자들이 자신만의 공간에 왜곡된 우리 이야기를 퍼다 나르면서 따봉을 받고 있다는 게 헛웃음만 나올 뿐이야.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저 한 번 웃고 지나가는 그런 이야기일 뿐이겠지만, 우리는 평생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해.
늘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남 이야기 떠들어대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1도 없지만, 그 작자들은 언제나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거야.

결국 어떻게 되었냐고?

온 세상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죄다 우리 형제를 욕했어.
특히 맏형인 내가 가장 큰 욕을 먹었지.

  나는 그저 간소하게 사는 것이 좋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근면성과 성실함을 들먹이며 날 게으르다고 했어, 그건 둘째도 마찬가지였어. 셋째만이 똑 부러지는 성격이라며 제대로 된 집에 살고 있다고 말했지.
단지 각자 성향에 맞게 살고 있는 것인데, 왜 보편적 기준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평가되고 재단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야

내가 왜 가족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줄 알아?
가족은 있는 그대로 있을 때는 없으면 안 될 존재이지만 그 사이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오면 그것으로 인해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가 되기도 하거든. 가령 돈이라거나.

우리도 그랬어. 문제는 돈이었지. 너희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 뒤에 우리가 성인이 되었을 때, 여전히 우리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해지며 새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졌지. 그 아이들 역시 우리를 욕했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우리는 각자 사업을 시작했어.
처음엔 힘들고 적자도 나면서 며칠 굶는 날도 있었지만, 해가 거듭될 수록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흑자가 크게 나면서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아이들도 낳았어.

이런 좋은 시간들이 계속 될 것만 같던 어느 봄 날, 막내가 가까운 사람에게 사기를 맞으면서 쫄딱 망해버렸지.

그 똘똘하고 자존감 높던 애가 한번에 그렇게 무기력증에 빠지더니 어느 새 술에만 의존하고 있는 거야..

세상에 돼지에 소주라니..
나도 돼지인지라 궁합이 잘 맞는다고는 말 못하겠다.


나와 둘째는 셋째를 위해 재산을 끌어 모으기로 했어.

재산의 절반 씩 모아 셋째에게 주었고, 나는 둘째에게 아이가 많아 힘들지 않냐며 남은 재산을 좀 더 떼어 둘째에게도 주었어.

그 덕에 나는 다시 지푸라기 집에 살았고 둘째는 진흙집, 막내는 벽돌집에 살았어. 그래도 나는 태생이 간소하게 사는 것을 좋아해서 불편함은 있었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어.

그러자 또 앵무새 같은 놈들이 찾아와서 또 우리의 삶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그 놈들에게 관심이 없다고 그 놈들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니야. 난 관심이 없지만 언제나 남 말하기 좋아하는 앵무새들은 나에게 관심이 많지.

아, 말이 새서 미안해. 동생들 이야기 중이었지? 그래. 알코올 중독자는 쉽게 도와주는 게 아닌가 봐. 막내는 큰 돈이 한 번에 생기자 복권이라도 맞은 마냥, 더 흥청망청 살기 시작했어. 차라리 자립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주는 게 현명했을 거야.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물질적으로 도와준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지금 이렇게 후회를 하지만 당시 나는 어쩌면 셋째를 도와주지 않았을 때 다른 사람들에 의해 결정 되어지는 나쁜 평판이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들의 비아냥은 우리의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인데 왜 그렇게 신경을 썼는지 모르겠어.

결국 나와 둘째는 가계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자기 가정을 지키는데 바빴고 서로 간에 우정도 점차 잃어갔어. 차라리 누가 욕을 하든 옛날처럼 있는 그대로 사는 게 더 나을 뻔 했나 싶기도 하고..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했어도 우리의 우정만큼은 부족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아마 우리 사이에 사람들의 평판과 큰 돈이 들어온 후로 조금씩 변했던 것 같아.

오늘 동네에서 놀림을 받고 돌아와 슬프다는 아이들의 말을 듣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남의 평판에 쫓기기 보다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삶을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그러지 못하면서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살라고 하는 모순이 참 웃기지도 않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2019. 06. 01 작성

-    2021. 04. 27. 검수 및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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