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는 굳이 자신보다 느린 거북이에게 경주를 신청했고, 그 경주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애매한 능력의 콤플렉스에 대하여



 
  “ 아..심심하네…”
  토끼는 오늘도 할 일 없이 집에서 너튜브만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예전부터 자기 잘난 맛에 자랑질만 하고 살다보니 주변에 친구랄 것도 없이 어느샌가 혼자 다니게 되었다. 말로는 굳이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자신이 왕따를 당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자신이 주변 동물들을 왕따 시킨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곤 집 밖 친구들의 소식에 꽤 귀가 밝았다.


  누군가 멋지고 훌륭한 사냥꾼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숲 속 커뮤니티에 “와~ 최근 떠오르는 사냥꾼이 있다고 하던데 몇 마리나 잡았나요? 무슨 동물을 잡았나요? 근데 나도 소싯적엔 하이에나 6마리랑 6대 1로… …” 라고 글을 쓰거나 누가 달리기 대회에서 우승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와~ 빠르긴 하네요. 근데 실전에서는 앞만 보고 달리는 대회랑 차이가… … 나는 최근에 치타랑 거의 비슷하게 달렸는데 저 보단 조금 못하네요. 다음에 같이 뛰어봐요” 라는 식의 글을 썼다. 익명이라는 그늘 아래 숨어서 되는대로 지껄이는게 잠깐의 지루함을 달래는 토끼만의 여가생활이었다. 어차피 동물들이 신고를 할 것도 아니고 우리 같은 동물에겐 경찰도 없는데 알 바 아니라는 식이었다. 쪽팔리는 행동인 줄 알지만 뭐… 밖에도 잘 안 나가거니와, 익명인데 누가 썼는지꙼̈ 알 게 뭐냐는 논리였다. 토끼는 그런 동물이었다. 그 짓도 어느정도 하다보니 말하는 방식이 드러난건지꙼̈ 그 짓을 할 동물이 한 놈 밖에 없었던건지꙼̈ 동물들이 토끼가 쓴 댓글임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토끼는 방구석 여포가 되어 (본인말로) 동물들을 왕따시키며 칩거 생활을 하게 되었다.

  유튜브를 보던 토끼는 문득 창 밖 너머에 거북이가 어딜 가는지꙼̈ 움직이긴 하는지꙼̈ 오솔길로 걸어 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거북이와는 어린 시절 동네에서 달리기를 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너무 느려서 속으로 엄청 웃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거북이가 걷는 걸 보니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똑같은 모습이라 한심하다 생각해 심싲하던 차 곯려줄 생각을 했다.
  몇 초 생각을 하던 토끼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생겼는지꙼̈ 양 귀가 하늘을 찌르듯이 뾰쪽 솟았다. 그 길로 냉큼 거북이에게 달려간 토끼는 괜히 친한 척 거북이에게 말을 걸었다.
  “헤이 안녕 거북이야!”
  거북이는 갑자기 나타난 토끼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 거북이야 어디 가는 길이니?”
  거북이는 토끼에 대한 기억이 잘 없었다. 어릴 때 몇 번 본 게 전부라 사실 이 토끼가 그 토끼인지도 알 수 없었다.
   “ 혹시 거북이야. 바쁘지꙼̈ 않으면 나랑 달리기 시합 좀 해주지꙼̈ 않을래? 내가 몇 년 동안 집에만 있었더니 몸이 뻐근하고 관절이 안 좋아져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씩 건강도 챙길 겸 운동을 하려는데 혼자 달리려니 변화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어서 말이야”
  거북이는 토끼가 머쓱해하며 자신에게 경주를 신청하는 속내를 알았지만 같은 숲 속 친구이기에 내색하지 않고 흔쾌히 경주를 수락했다. 토끼가 몸도 안 좋고 재활 목적이 좀 더 크다고 생각하여 내키지꙼̈ 않지만 달려주겠다고 했다. 대신 숲 속 동물들을 모두 불러 경주하면 좀 더 객관적인 피드백이 있을테니 날짜를 정하고 모두가 모인 곳에서 달리자고 했다. 거북이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동물들이 보는 데서 달려야 토끼가 정정당당히, 그리고 다른 마음 안 품고 열심히 달릴 것 같았다.
 
  경기 날, 숲 속 동물들이 이게 무슨 경주냐고 투덜대며 모였다. 마을에서 모두의 신임을 얻는 거북이가 요청하지 않았다면 오기도 싫은 이벤트였다. 게다가 토끼의 속내를 모두 알고 있었다. 결과는 뻔한 경주인데 그걸 알면서 변명거리를 대며 경주를 하는 토끼를 때려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모두 끝까지 참을 뿐이었다.
  경주가 시작되었고, 숲 속 동물들의 생각이 당연하다는 듯 토끼는 거북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결승점을 향해 달려갔다. 한참을 달렸을까, 중간 지점에서 뒤를 돌아보니 거북이는 보이지도 않았다. 역시 시시하다는 생각이 든 토끼는 여전히 느려도 너무 느린 거북이의 모습에 소리내어 웃었다. 역시 동물들 사이에서 가장 빠른건 자신이고 예전 치타와 동등하게 달린 속도가 죽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다른 동물들과 비슷했다면 아무리 느린 거북이라도 자신의 시야에 보였을 것이라는게 토끼만의 근거였다. 그렇게 허구로 떠들고 다닌 ‘토끼치타동등설’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으며 내친김에 잠깐 눈만 붙이자는 생각으로 낮잠을 잤다.
 
  얼마나 지났을까,  중간점을 지나는 거북이는 세상 모르고 낮잠을 자고 있는 토끼를 보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굳이 자신보다 느린 상대에게 경주를 신청하고 경주 도중에 낮잠을 자다니. 이런 무시가 또 없었다. 일말의 기대를 한 자신이 미웠고 동물들이 보는 경기에서마저 더티플레이를 한 토끼가 저주스러웠다.  '차라리 수영을 하자고 할 걸', '그냥 씨름을 하자고 할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상대의 약한 부분을 이용해 자신의 강점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에 거북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결승점을 향해 걸어갔다.
  거북이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토끼가 자다 깨서 달려와 결승점을 지나도 상관없었다. 거북이는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질 게 뻔한 경주를 수락한 스스로의 선택을 믿지 못하는 것이니 그냥 자신의 선택을 믿으며 결승점을 향해 걸었고 한참이나 걸렸지만 결국 토끼보다 먼저 결승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결승점에서 많은 동물들이 거북이를 응원하며 축하했다. 거북이는 경주를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이겼고 많은 동물들이 자신을 응원하고 있음을 다시 깨닫게 되어 자신이 정말 행복하고 멋진 동물임을 되새겼다.

  “으으….”
  토끼는 해가 지고 밤이 되어서야 추위에 몸을 떨며 일어났다. 주변을 보니 이미 어두워진 경주길.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급하게 결승점으로 달려가면서도 거북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냐, 아무리 시간이 많이 지났더라도, 혹시 거북이가 날 지나쳤을지라도 지금부터 달리면 따라잡을 수 있을거야! 내가 누군데!!!! 치타와 어? 대결에서 어? 동등하개 달렸고 내가 간발의 차로 이겼는데 어?! 이대로 질 순 없어!!!” 토끼는 살면서 달려 본 속도 중에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렸다. 남은 생애 다시 이렇게 달릴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길 정도로 빨리 달렸다.

  결승전에 도착한 토끼는 자신이 그토록 무시하고 까내렸던 거북이에게 졌음을 알았고 거북이가 흘린 땀자국들과 숲 속 동물 친구들이 버리고 간 피켓에 덧칠 된 낙서들을 보았다.
 
  “토끼 병xxx”
  “토끼 쓰xx”
  “우리 숲 속에서 꺼져”
  “ 다신 우리 마을에 보이지도 말고 글도 쓰지마라. 닉네임 치타경운기 너인거 다 안다.”
 
  그제서야 토끼는 상대의 약점을 들추어내는 것으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감추려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을 알았지만, 자신은 이제 사과할 수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2019. 05. 24 - 첫 작성
2024. 04. 29 - 기본뼈대 수정 및 내용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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