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74

사람의 사고방식은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기본저긍로 일정한 시기에 그 밑바탕이 정해진다. 그때 반복적으로로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면 명확해진 꿈과 생각이 자기 안에 깊이 뿌리내린다. 일기에는 그런 힘이 있다.


우리는 자유라는 명분 아래에 많은 의사를 표현하지만,
더러는 개인 혹 단체의 자유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잘라내고 있다.
- yellowkid


도서명 :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출판사 : 현대지성
저자 : 존 스튜어트 밀
독서기간 : 2019년 10월 16일 ~ 2019년 10월 26일

  2019년 9월 30일, 현대지성에서 시행한 '가을에는 철학을' 이벤트에 당첨되었다고 메일이 왔다. 그리고 며칠 뒤 도서가 왔고, 읽고 있던 책이 있던 터라 그 책을 다 읽고 읽는다고 시작이 좀 늦었다. 약 10일 정도 걸려서 읽었는데,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딱 중간난이도의 책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이 때의 가치관과 지금의 가치관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인간사회의 기본이 되는 '자유'의 개념에 있어서는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요즘은 자유라는 명분 아래 개개인의 자유, 소수의 자유들이 인정받아야 한다고 해서 많은 인권 관련 법들이 발의 되고 있지만, 인권이라는 이유로 모든 법안들을 다 들어주어서는 안될 일이다.

  인권에 관한 법일수록, 사상일수록, 문화일수록 더욱 더 진리와 팩트를 기초로 삼아, 과연 공익가 되지는 않는지, 소수의 세력가 되지 않는지, 사람의 존엄성생명가 되지는 않는지 분석하고 뜯어보고 다시 한 번 더 생각해서 자유의 표현을 보장해줘야 할 것이다

 

 

1. 자유의 범위
  그 누구도 이유없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 받을 수 없고, 누군가를 억압할 수 있는 권한이나 특권이 없지만, 개인의 자유가 다른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개인의 자유가 사회의 공익에 해가 된다고 할 때, 법과 여론을 통해 제재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다.

2. 지금 이 사회(대한민국 내)의 자유와 부작용
  지금 우리나라는 자유라는 명분 아래 많은 의사를 표현하고, 소수의 인권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해서 시민의식을 진보시키려 하고 실제로 진보되고 있는 듯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민의식이 올라간다고 그것이 무조건 다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 사회적으로 민감한 부분이라 언급을 할까 말까 하다가 자유와 부작용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언급해본다. 이렇다 저렇다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보다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에 ..)

  예를 들어 동성애에 관한 부분도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들을 "옹호 해줘야한다 vs 옹호 해주면 안된다"의 구조로만 알고 있고, 그 결과 거의 대다수의 인터넷 댓글에는 그저 "반대 vs 찬성"의 내용으로만 싸우고 있다. 반대는 왜 자기들네 끼리 살면 되지 왜 법까지 만들어서 보호를 받으려고 하느냐는 입장이고, 찬성의 입장은 왜 그게 찬성과 반대의 개념으로 가느냐, 인권이 사람에 의해서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있는 부분인가, 라는 주장으로 엄청 논란 중이다.

  몇 년 전부터 동성애자, 성 소수자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운동과 퍼포먼스들이 매년 대도시(서울, 대구 등)에서 일어났고, 그 결과 몇 년 사이에 동성애자들의 인구 상승률이 급증했다. 그리고 에이즈 환자들 역시 차별금지법이 거론되던 그 시점 이후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특히 10대 20대에서 가장 큰 상승률을 보였다.

  2018년 신규 에이즈 환자 1,200명 중 1,100명은 남자 동성애자 였고, 100명은 그냥 여성이었다. (이 조사는 질병관리본부에서 조사, 정리, 발표를 한 결과표다.) 이 지표로 봤을 때, 동성간의 무분별한 성행위로 인해 에이즈가 감염이 되고, 그 중 양성애자들이 여자들과 성관계를 하면서 여성에게도 옮긴다고 볼 수 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자유를 외치는 것과, 자유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 법으로 보호 한다고 모든 사람들의 삶이 더 윤택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동성애를 떠나서 어떤 부분에서나 ㅡ 위에서 말했듯이 인간의 생명에 해가 되고, 사회의 문화를 어지럽히는 것은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질타를 받아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자유의 결과가 불특정 광범위한 피해라면, 그 자유는 더이상 자유가 아니라 사회적 재해가 되는 것이다.

3. 우리가 해야할 일
  그렇기에 우리는 자유라는 것을 객관적인 자료와 이성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그 자유의 본질이 무엇인지 꿰뚫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조건 인권을 위한 일이면 다 좋은게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무조건적인 제재 또한 늘 사고를 막고 사회를 윤택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과한 제재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일명 "고인물" 현상을 만들게 된다. 사회 구성원이 법의 힘에 압도 당하여 더 이상의 발전을 할 마음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것 또한 인류의 미래를 짓밟는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항상 어떠한 문제를 두고 그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에 대한 대처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항상 고민하고 생각하며 끝 없는 수정의 반복을 통해 최적의 결과를 찾아야 할 것이다

- yellowkid
Le dimanche. 27. octobre. 2019

길을 걸었지
걷고 또 걸었지
오랜 시간 걷고 또 걸었지
가끔은 급한 마음에 뛰기도 했었지

이 길은 언젠가 따뜻한 햇살을 내게 비추며
이젠 고생했으니 안 뛰어도 된다고,
이젠 그냥 천천히 걷기만 하면 된다고
걱정 없이 그저 걷기만 하면 된다고
그렇게 위로해줄 줄 알았지

하지만 길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 또 처음 그 자리로 나를 이끌었지
또 끝없이 너의 뒷모습을 보며
길을 걸었지

걷고 또 걸었지
오랜 시간 걷고 또 걸었지
가끔은 급한 마음에 뛰기도 했었지

한 번만 제대로 물어봤었더라면
제대로 알 수 있었을 거라는 말이 떠올라
너의 이름을 크게 불러 보았지만
너는 대답이 없었지

처음 이 끝나지 않을 길을 걸을 동안,
그 길을 돌고 돌아 다시 처음 그 자리로 돌아올 동안
주변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네 마음은 어느새 바뀌었나 보다

그렇기에 널 불렀던 나의 목소리는
갈 곳 잃은 소리인 것 마냥 허공을 때리고
산산조각 부서져 사라졌지

힘 없이 터덜터덜 길을 걸었지
걷고 또 걸었지
오랜 시간 걷고 또 걸었지
가끔은 마음이 급해 뛰기도 했었지

서툰 마음에 혹시 잘못되어
소중한 것을 영영 잃게 될까 봐
한 마디 전할 용기가 없어
그저 말없이 걷고 또 걸었지
오랜 시간 걷고 또 걸었지

- Le mardi. 22. octobr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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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의독서일기 #55번째
<냉정한이타주의자 - 윌리엄 맥어스킬>

독서기간 : 2019년 10월 5일 ~ 2019년 10월 15일

 

#1. 책의 내용 중

  p16에 나오는 Jay-Z의 생명의물 이야기
유명 래퍼이자 사업가인 Jay-Z가 '제이지의 일기 : 생명의 물' 순회공연을 해서 아프리카 전역에 '플레이펌프' 4,000대를 설치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기존의 물을 긷는 행위를 '노동' 개념에서 '놀이' 개념으로 바꾸어 삶의 질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캠페인을 통해 6,000만 달러를 모금하는데 그 중에 당시 영부인이었던 로라 부시가 1,64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플레이펌프는 당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었고 그 누구도 플레이펌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아프리카 전역에 4,000대의 플레이펌프가 설치되었고 처음은 다들 환영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플레이펌프를 즐기며 물을 길어야할 아이들이 펌프를 돌리지 않기 시작하면서 물을 긷는 것을 모두 여성에게 돌아갔다. 설상가상으로 물을 긷는데 원래의 양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로 오히려 자선사업이 해가 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 사례는 실질적인 기획보다 감성에만 치우친 전형적인 사업실패의 모델이다.

#2. 내 생각

  이처럼 우리는 누군가르 도와줄 때, 행위의 주도권, 즉 사건의 중심이 누구에게 향헤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말에 그 사람이 도움을 받고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를 고민하지 않고 내가 누군가를돕는다에 초첨을 맞추어 버리니 실제 환경이나 현실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내 기준에서 상대를 도우는 시스템으로 자리잡혀 일이 제대로 되자 않는 경우가 많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게 되는 스타일이다

  예전 한 선교사님이 선교지에서 기술을 가르치는데 정말 비싼 값을 받고 기술을 가르친다는 말을 듣게 되었었는데,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곧 내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용인 즉, 공짜로 기술을 가르치게 되면 학생들의 간절함이 없어져 아쉬울 것 없다는 생각으로 수업에 임하기 때문에 돈이 필요한 선교사님의 입장이나 기술이 필요한 학생 모두에게 해가 된다는 것이다.

  교육비가 비싸도, 교육이 잘 되어있으면 간절한 마음을 가진 배울 사람은 다 알아서 배우러 오게 되어있다는 그 말이 아직 기억에 남고, 실제로도 수강료가 월급보다 비싼 강의지만 서로 배우겠다고 난리를 부린다는 말에 한 번 더 놀랐다. 그 결과 양방 모두 시너지를 일으켜 그 지역의 삶의 질이 단기간에 확 올라간 사례를 들었었다.

  이처럼 감성에 젖어 보여주기 식으로 자선사업을 진행하는 바보같은 행동보다 이성을 바탕으로 냉정한 기부,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기부를 받는 대상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기부에 임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항상 우리의 생각과 계획이 빈틈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초장부터 첫 단추를 잘못 꿰는 일은 확연하게 줄어들겠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철저하지 못하다. 그러기에 계속해서 적당히 괜찮은대로 기부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감성 우선의 기부활동은 상대를 위한 기부가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를 내세우기 위한 기부활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 기부를 하게 되면 작은 도움이라도 내 도움을 통해서 상대방이 좀 더 스스로의 삶에 주도권을 가지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기회와 환경을 마련해주는 쪽으로 기부를 하고싶다.

- yellowkid
Le dimanche. 20. octobre. 2019


p.40 중반절

  하지만 어떤 행동에대한 의사가 이성적인 근거들에 의해 밑받침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것은 단지 한 사람의 선호일 뿐이다. 그리고 이성적인 근거라고 제시한다고 하면서, 단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비슷한 선호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면, 마찬가지로 그것은 이성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선호 대신에 많은 사람의 선호를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일 뿐이다.

  -> 많은 사람들이 선호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성적 근거에 바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그저 다수의 선호일 뿐이지 이성적 근거로 활용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맞다고 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라고 말하며 구체적인 논리 없이 감성의 목소리만 키우고 있다. 이에 밀은 몇 페이지 뒤에 이런 것을 일종의 맹신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한다

p.40 하반절 (번호는 내가 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1) 이렇게 다른 많은 사람들의 선호에 의해서 밑받침된 자기 자신의 선호가, 그의 종교적 신조에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 않은 도덕과 취향과 예절에 관한 자신의 모든 판단들에 대해 2) 그가 가지고 있는 (완벽하게 만족스러울 뿐만 아니라) 유일한 근거가 되고, 3) 심지어 자신의 종교적 신조를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된다.


 

지금 우리가 사는 감성의 시대에는 자유라는 명분 아래 선호(기호)가 정의가 되기도 하고, 정의가 개인의 기준으로 퇴색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성적 근거 없이 그저 감성만 내세운 선호(기호)가 이성적 근거보다 더 큰 힘을 얻어 우리 모두가 누려야 할 자유를 흐리고 있다.

학교 도서관 독서동아리 프로그램인 "다독다톡"에서 2019년 2학기 1차 도서로 Me before You를 뽑았다.

독서기간 : 2019년 9월 24일 ~ 2019년 10월 4일

#1. 존엄사란?

  몇 년 전부터 존엄사에 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다우리나라는 2017년에 존엄사가 인정되었고 2018년부터시행되었다. 존엄사란 무엇일까? 개념적 정의로는 회생이 불가능한환자에 대해 의료행위를 중단하는 것이라고 나와있는데, 여전히 사회에서는 신의 영역을 인간이 임의로 결정하고져버려서는 안된다는 의견과, 인간의 결정권이라며 남은 유족들에게 더 이상 희망고문으로 힘들게 해서는안된다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작품 속에서도 윌 트레이너(남주인공)가 큰 교통사고를 당해 경추 아래를 전혀 쓰지 못하는 사지마비에 처하게 된다.원래 윌은 사회적 엘리트의 삶을 살았고 인간관계도 좋았지만 사고 이후 많은 친구들이 떠나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었기에 환자의 자살을도와주는 조력자살 병원에 입원하기로 가족들에게 말했다. 가족들은 극구 반대하다가 윌의 요청에 동의는했지만, 혹시라도 마음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간병인인 루이자(여주인공)을 고용해서 하루의 대부분을 윌과 함께 지내도록 한다. 그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다른 입장 때문에 다투던 마음들이 점차 사랑이란 감정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참 흥미롭다

#2. 신의영역, 인간의 결정권

존엄사는 과연 인간이 스스로 결정해도 되는 것일까. 과거와비교하면 정말 정 반대의 삶으로 추락해버린 윌을 생각하면, 나 같아도 살 의지가 없어질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치부를 다 보여줘야 하고, 스스로는 말하는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생명을 단축 시키려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하다.

하지만 또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존엄사를 당연하게생각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생명경시 현상이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너무 합리적으로만 생각해 금방생명을 포기해버리진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 든다. 작중에서는 루이자로 인해 윌이 정말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많은 것을 하며 행복도 느끼기에 존엄사에관한 결정은 함부로, 쉽게 결정해서는 안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3. 생명에대해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

우리 중 삶과 죽음에 관하여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또 얼마나 자주 고민하고 생각할까. 태어남과 죽음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결정할 수 없는부분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언제 우리 눈 앞에 죽음이 나타날 지 모르는일인데 우리는 “아직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삶의뒷 편으로 던져놓지는 않는가.

삶 속에서 가끔씩은 생명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을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하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나 이세상 떠나도 내 죽음일랑 서러워 말고

그저 침울하고 음산한 조종(弔鐘)마냥 흘려 보내주시오

그리고는 세상 사람들에게 경고나 한마디 해주시오

내가 더러운 세상을 떠나 가장 더러운 구더기와 함께 살려 갔다고,

혹시 그대가 이 시를 읽는다 해도 기억일랑 마시오

이 시를 쓴 손을, 그대 이토록 사랑하거든

그대의 감미로운 생각에선 잊혀지길 바랍니다

나를 생각하면 공연히 슬퍼지실 것이기에

내가 녹아서 진흙이 되었을 때

오 ! 설혹 이 시를 보신다 해도 아예

내 가엾은 이름일랑 부르지 마시고

그대의 사랑이 나의 생명과 함께 썩어버리게 하시오

현명한 세상이 그대의 슬픔을 꿰뜷어보고

나 하직한 뒤에 그대까지 비웃으면 어찌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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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마음 중심에는 대체 어떤 소중하고 여린 것이 있기에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하도록 거칠게 울어대느냐

2019. 10. 10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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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상처의 말을 하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의 말을 하는 것

누군가 나에게 서운한 말을 하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선운한 말을 하는 것

그냥 하는 말이라고,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마음 속에
1%의 진심이라고 있었기에,
단 한번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기에
그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말을 평소의 생각이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것

평소 좋은 생각과
좋은 에너지의 근원이 될만한 생각을 하자

Le dimanche. 15. septembr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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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재난 영화하면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무엇일까?
쓰나미? 폭설? 지진? 전염병? 좀비? 난 그 무엇보다 사람들 간의 "감정싸움""의견대립"이라고 생각한다. 긴박한 상황 속에서 대중이 내 말을 따라주면 얼마나 고맙겠는가? 하지만 세상은, 아니 사람들은 그렇게 쉽지 않다. 이 영화에는 단순한 의견대립만 넣은 것이 아니라 의견대립을 극대화 시키는 한 가지를 넣었는데, 바로 "신앙"이다. 편의점이라는 한정적인 공간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불안에 떨고 있는데, 한 중년 여성이 계속해서 성경 구절을 읊는다.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보는 것을 추천한다. 신앙은 좋은 것이지만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적재적소에 사용하지 못하면 옆에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나 큰 원기옥고구마를 먹게 되는지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1. 재난시 사람들의 유형

  불가항력적인 재난이 찾아왔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생존에 필요한 의약품과 식료품을 먼저 챙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족이나 연인을 먼저 찾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반응들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뿐 아니라, 게임속에서도 일어서도 일어난 적이 있는데, 정말 흥미로운 사건이다.
  B사의 W게임에서 발생한 "오염된 피 사건"은 2005년 9월 13일 게임 내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인해 가상 전염병이 퍼진 사건이다. 이 오염된 피는 게임 내 새로운 던전의 보스가 플레이어를 공격했을 때, 지속적으로 체력이 감소하고 주변의 플레이어들에게 전염이 되어 주변 플레이어 모두가 전염에 걸리는 "오염된 피"라는 기술 때문에 발생했다.

<게임 내 대도시 중 하나인 아이언포지. 플레이어는 물론 심지어 NPC까지 전염되었다.>

  던전 내에서 소환된 플레이어의 소환수가 오염된 피에 감염된 채로 소환해제하고, 마을에서 다시 펫을 소환 했을 때, 스킬이 유지된 채로 소환수가 소환이 되어, 주변의 플레이어와 심지어 NPC에게까지 전염이 되어 그 마을에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전염이 되었다. 죽어서 다시 살아나도 그 사이 다른 사람들이 전염이 되었기 때문에 또 죽고, 또 죽고, 마을에는 시체들이 쌓여만 가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여러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이 죽기 전에 자신의 마나를 사용하여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사람. 전염을 저지시키기 위해 감염자들을 한 곳으로 격리시키려 안내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지 않으려 구석에서 혼자 죽는 사람. 이런 훈훈한 광경 속에서 먹으면 전염병이 풀린다는 "가짜 면역약"을 거금에 파는 사기꾼들도 있었다. 결국 게임사에서 서버 리셋과 빠른 패치로 사태는 수습했었지만, 이런 사건들이 너무 유명해져서 행동심리를 연구하는 대학들이 이 사건을 두고 여러가지 연구를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영화 <미스트>에서도 많은 유형들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안개가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한 이후,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사람, 다른 대안을 찾으러 가는 사람,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물증이 없이는 믿지 못하는 사람, 물증을 보러 가자고 해도 자신을 놀린다며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 자신이 믿는 신에게 기도하며 회개하는 사람 등 많은 유형의 사람이 나오는데, 보는 내내 답답하면서도 내가 실제로 저 곳에 있다고 생각하니 충분히 또 이해는 되는 상황이라 한 명 한 명에게 더욱 몰입이 되었던 것 같다.

#2. 리더십의 중요성

  영화를 보다 문득 리더십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리더라는 자리는 그 사람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아무래도 자리라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에 특히나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한 상태에서는 말 한마디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고, 자칫하다가 구성원 모두가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배의 잘못된 선장, 서론에서 이야기 했던 그 신앙심 있는 중년의 여자가 초반부터 눈에 거슬리더니 결국 사고를 쳤다.

윙 가르디움 레비오웃싸- 는 아니고...

  혼돈의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판단력을 잃어가고, 하나로 일관된 주장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 하나 둘 그녀의 말에 동조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그런 말에도 신봉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신봉자들은 안개로부터 탈출할 계획을 짜는 것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그냥 당장의 심적위안만을 찾게 된다. 전형적인 사이비, 다단계 등 사람을 세뇌하여 소수의 욕망을 채우는 그런 단체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무능하지만 말하길 좋아하는 리더, 혹은 겉은 거창하고 화려하지만 결국 논점은 없는 그런 단체를 만나게 되면 우리도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겠구나.. 싶었다.

  내가 잘못된 리더가 되지 않기 위해, 아니면 내가 잘못된 리더 아래에 있지 않기 위해, 늘 생각하고 고뇌하고 비판적사고를 키우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3. 말주변이 없어 급조된 마무리

  더 이상은 말할 것도 없고 말하면 영화를 볼 맛이 안 날 것 같아서, 영화이야기는 여기서 끝낸다.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믿고 있는 것이 무조건 맞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보는 것이 무조건 맞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
  나도 종교가 있다. 나도 종교가 있기에 종교를 부정하자는 말은 아니고, 누구나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삶 속에서 낯선 것과 부딪히는 순간에 과연 "내가 보는 것을 색안경을 벗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결국 사람은 자신의 생각대로 살테니까.

  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또 물어보고, 끝까지 질문하는 삶을 살아보자. 어릴 때 그렇게 왜? 라는 질문을 하면서 어른이 되어서는 왜 질문하는 것을 멈추는가. 왜? 라는 질문은 질문하는 사람과, 답변하는 사람,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에 늘 좋은 안내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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