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못했던 기억을 잊기 위해
종이에 적어 불에 태운다

종이는 불 타 없어졌지만
종이에 써내려 갔던 손 끝의 촉감과
코 끝을 울리던 종이 타던 냄새

기억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잊으려고 했던 노력들로 인해
더 깊은 곳에 남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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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시간을 따로 떼어두어라

그것은 지혜의 샘이기 때문이다

 

웃는 시간을 따로 떼어두어라

그것은 영혼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두어라

그것은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 로버트 브라우닝 -

큰 형은 자신의 재산을 다 털어 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지푸라기 집에 살았다.

작은 형은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털어 막내 동생에게 주었고 흙으로 지은 집에 살았다.

막내는 형들에게 받은 재산으로 벽돌집을 지어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 가족, 돈에 대하여"


우리 삼형제는 너희가 동화책을 읽던 그 시절에 부모 아래에서 독립하여 자신만의 성향대로 살고 있었어.

그런데,  남 이야기 떠들기 좋아하는 형편없는 작자가 우리의 삶을 관찰하더니 곧 온 동네에 가서 떠들기 시작했고 기어코 외국까지 나가서 우리 이야기를 떠들어 대는 것이었어.

내용인 즉 첫째는 게을러 지푸라기 집에 살고, 둘째는 그나마 좀 나아서 진흙 집에 살고 셋째만이 부지런하여 벽돌집에 산다는 그런 이야기였지.

그런데 그 이야기가 뭐가 재미있는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어. 중요한 건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었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저 사람들의 관심만 중요하게 생각한 작자들이 자신만의 공간에 왜곡된 우리 이야기를 퍼다 나르면서 따봉을 받고 있다는 게 헛웃음만 나올 뿐이야.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저 한 번 웃고 지나가는 그런 이야기일 뿐이겠지만, 우리는 평생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해.
늘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남 이야기 떠들어대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1도 없지만, 그 작자들은 언제나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거야.

결국 어떻게 되었냐고?

온 세상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죄다 우리 형제를 욕했어.
특히 맏형인 내가 가장 큰 욕을 먹었지.

  나는 그저 간소하게 사는 것이 좋았을 뿐인데, 사람들은 근면성과 성실함을 들먹이며 날 게으르다고 했어, 그건 둘째도 마찬가지였어. 셋째만이 똑 부러지는 성격이라며 제대로 된 집에 살고 있다고 말했지.
단지 각자 성향에 맞게 살고 있는 것인데, 왜 보편적 기준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평가되고 재단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야

내가 왜 가족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줄 알아?
가족은 있는 그대로 있을 때는 없으면 안 될 존재이지만 그 사이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오면 그것으로 인해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가 되기도 하거든. 가령 돈이라거나.

우리도 그랬어. 문제는 돈이었지. 너희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 뒤에 우리가 성인이 되었을 때, 여전히 우리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해지며 새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졌지. 그 아이들 역시 우리를 욕했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우리는 각자 사업을 시작했어.
처음엔 힘들고 적자도 나면서 며칠 굶는 날도 있었지만, 해가 거듭될 수록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흑자가 크게 나면서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아이들도 낳았어.

이런 좋은 시간들이 계속 될 것만 같던 어느 봄 날, 막내가 가까운 사람에게 사기를 맞으면서 쫄딱 망해버렸지.

그 똘똘하고 자존감 높던 애가 한번에 그렇게 무기력증에 빠지더니 어느 새 술에만 의존하고 있는 거야..

세상에 돼지에 소주라니..
나도 돼지인지라 궁합이 잘 맞는다고는 말 못하겠다.


나와 둘째는 셋째를 위해 재산을 끌어 모으기로 했어.

재산의 절반 씩 모아 셋째에게 주었고, 나는 둘째에게 아이가 많아 힘들지 않냐며 남은 재산을 좀 더 떼어 둘째에게도 주었어.

그 덕에 나는 다시 지푸라기 집에 살았고 둘째는 진흙집, 막내는 벽돌집에 살았어. 그래도 나는 태생이 간소하게 사는 것을 좋아해서 불편함은 있었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어.

그러자 또 앵무새 같은 놈들이 찾아와서 또 우리의 삶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그 놈들에게 관심이 없다고 그 놈들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니야. 난 관심이 없지만 언제나 남 말하기 좋아하는 앵무새들은 나에게 관심이 많지.

아, 말이 새서 미안해. 동생들 이야기 중이었지? 그래. 알코올 중독자는 쉽게 도와주는 게 아닌가 봐. 막내는 큰 돈이 한 번에 생기자 복권이라도 맞은 마냥, 더 흥청망청 살기 시작했어. 차라리 자립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주는 게 현명했을 거야.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물질적으로 도와준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지금 이렇게 후회를 하지만 당시 나는 어쩌면 셋째를 도와주지 않았을 때 다른 사람들에 의해 결정 되어지는 나쁜 평판이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들의 비아냥은 우리의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인데 왜 그렇게 신경을 썼는지 모르겠어.

결국 나와 둘째는 가계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자기 가정을 지키는데 바빴고 서로 간에 우정도 점차 잃어갔어. 차라리 누가 욕을 하든 옛날처럼 있는 그대로 사는 게 더 나을 뻔 했나 싶기도 하고..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했어도 우리의 우정만큼은 부족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아마 우리 사이에 사람들의 평판과 큰 돈이 들어온 후로 조금씩 변했던 것 같아.

오늘 동네에서 놀림을 받고 돌아와 슬프다는 아이들의 말을 듣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남의 평판에 쫓기기 보다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삶을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그러지 못하면서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살라고 하는 모순이 참 웃기지도 않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2019. 06. 01 작성

-    2021. 04. 27. 검수 및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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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나는 기쁨에 대하여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다고 해서
다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론 이것 저것 해보다가 어쩌다 접하게 되는 그 것이
내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조금 틀어진다고 해서
낙담하지 마세요.

계획에 없던 일로 인해 둘러가는 그 길에서
예상치 못한 행운을 만납니다.

둘러가는 것이 느리고 오래걸리고 힘들겠지만
둘러가야만 볼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낮에 보는 별보다 어둠 속에서 보는 별이
더 빛나는 법입니다.

 

우리 모두는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대지만
그 중 몇 몇은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본다네

- 오스카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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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한 번 쯤 찾아오는 기억들

 

언젠가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려 보냈었다.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라도 날린 것이었을까.
비행기를 날려 보내는 그 날은
뭔가 기분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마음 한편에 걱정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종이비행기는 얼마나 날았을까.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정처 없이 날아다니며
밭에서 일하는 노인과 바다의 물질하는 해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고속도로 위 바쁜 자동차들,
시골의 한적한 여유와 도시의 숨 막히는 바쁨을 보고서도
무엇이 좋아 지치지도 않는지 날고 또 날았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잊고 있다가도
문득 여유가 생길 때면 종이비행기를 떠올리곤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종이비행기는 우연처럼 나에게 돌아왔다.

종이비행기를 잡으니
내가 종이비행기를 날린 이유가 생각났다.

종이비행기는 목적지를 잃고 다시 돌아왔지만
당신의 답장을 기대하며 다시 날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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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라는 바람 앞에 마주한 작은 거인

 

사람이란 존재는 나약하고 나약하여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과 같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영생이었고

그에 대한 탐험과 연구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시간이란 바람 앞에서

인간은 아무런 저항도 못 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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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쳇, 저건 보나마나 신포도지 뭐. 신포도 주제에 뭐가 그렇게 오래 매달려 있으려고 저 높이 매달려 있는지 모르겠네. 어차피 아무도 먹지도 않을텐데"
 

방구석 평론가

 
  마을에 포도 맛이 좋기로 소문난 농장이 있었다. 대체 누가 먹는지 본 적 없지만 여우는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들은 그 포도농장이었다.
  자신은 꿈에서나 먹어볼 법한 포도였기에 언젠가 어른이 되어 돈을 많이 벌면 저 포도를 먹어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은 집에서 일 인분의 양도 감당하지꙼̈ 못하는 식충이.  여우모피를 쓴 여우고기에 불과했다.
  여우는 그 포도가 싫었다. 한 때 삶의 목표로 삼았던 포도가 이젠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그깟 포도 하나 못 사먹는 여우로 만들어버린게 저 재수없는 보랏빛 포도라고 생각했다.

  “저까짓 포도 누가 돈 주고 사먹냐, 그냥 몇 알 훔쳐먹으면 다신 안 먹을 포도인데. 동네도 조용하겠다 한 송이만 맛봐야겠다”
  무적의 논리로 서리를 다짐한 여우가 긴 막대로 허공을 휘저었다. 운동이라곤 평생 하지도 않은 여우가 긴 막대 끝에 걸리는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감당은 커녕 일자로 들고 가만히 서있는 것도 힘들었다. 그렇게 몇 번 휘젓다가 체력이 바닥난 여우는 막대를 버리고 돌을 주웠다.
  돌을 포도송이를 향해 던졌지만 근처도 가지꙼̈ 못했다.
  한참동안 궁리를 하던 여우는 누군가 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옆 동네에 머리가 좋다고 소문난 까마귀였다. 그 까마귀는 포도나무 꼭대기에 앉아 포도를 쪼아먹기 시작했다. 여우는 까마귀에게 부리로 가지를 쪼아서 한 송이만 떨어뜨려 달라고 부탁했으나 까마귀는 서리도 능력이 되고 머리가 좋아야 하는거라며 여우를 놀려댔다. 여우는 저 꼴뵈기 싫은 까마귀 놈을 언젠가 고기반찬으로 만들어버리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몇 시간동안 고민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도 목표로 삼은 포도 한 송이는 커녕 한 알도 못 떨어뜨린 여우는 씩씩거리며 애꿎은 포도에게 탓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우는 생각했다.

"쳇, 저건 보나마나 신포도지 뭐. 신포도 주제에 뭐가 그렇게 오래 매달려 있으려고 저 높이 매달려 있는지 모르겠네. 어차피 아무도 먹지도 않을텐데" 
"왜 세상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거지? 왜 내가 하려고만 하면 주변에 방해하는 것들이 많냔 말야. 이 세상에는 정말 도움되는 것들이 하나도 없어. 아까 그 까마귀놈도 똑같애. 지도 서리하는 주제에 그깟 포도 한 송이 좀 떨어뜨려주면 부리라도 부러져?"
 세상에 대한 불만을 숲 속 동물 모두가 들리도록 내뱉지도 못하고 코 앞에서만 중얼중얼댄 여우는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다.
 
  "여우야, 어디 다녀오니? 밥 먹을래?"
  "아니요. 먹고 왔어요"
 
엄마 여우의 질문에 건조하게 말한 여우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타닥 타닥’
  여우는 숲 속 커뮤니티에 “ 야 우리마을에서 전국에서 부자들만 사먹는 @@포도 한 송이 선물받아서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맛있는 포도는 아니더라. 자연산 A- 정도? SS급이라고 생각한 동물 있으면 사먹지꙼̈ 마라…. 그 돈이면….”라고 글을 쓰며 “쉰포도.. 먹었으면 오늘 묫자리 알아봤을듯…”하며 중얼댔다.
 
  - 똑똑
 
  "여우야 뭐하고 있니? 포도먹고 하렴"
 
  무심한 척 포도접시를 받아든 여우는 어머니가 방에서 나가고서야 웃으며 "역시 집에서 먹는 포도가 최고지"라며 만족한 표정으로 포도를 먹었다.
 
  힘들게 노력해야 먹을 수 있는 자연산 포도를 얻지 못한 자신의 능력을 개선하기 보다 신포도라며 포도탓을 하는 여우의 모습. 그저 편하게 얻을 수 있고 무난한 맛에 만족할 수 있는 하우스 포도로 적당히 만족하며 현재에 안주하는 여우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2019. 5월 - 1차 작성
2024. 04. 29 수정1 - 방구석 철학자들에서 방구석 평론가로 부제목을 바꾸었다. 배경스토리를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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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끼는 굳이 자신보다 느린 거북이에게 경주를 신청했고, 그 경주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애매한 능력의 콤플렉스에 대하여



 
  “ 아..심심하네…”
  토끼는 오늘도 할 일 없이 집에서 너튜브만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예전부터 자기 잘난 맛에 자랑질만 하고 살다보니 주변에 친구랄 것도 없이 어느샌가 혼자 다니게 되었다. 말로는 굳이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자신이 왕따를 당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자신이 주변 동물들을 왕따 시킨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곤 집 밖 친구들의 소식에 꽤 귀가 밝았다.


  누군가 멋지고 훌륭한 사냥꾼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숲 속 커뮤니티에 “와~ 최근 떠오르는 사냥꾼이 있다고 하던데 몇 마리나 잡았나요? 무슨 동물을 잡았나요? 근데 나도 소싯적엔 하이에나 6마리랑 6대 1로… …” 라고 글을 쓰거나 누가 달리기 대회에서 우승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와~ 빠르긴 하네요. 근데 실전에서는 앞만 보고 달리는 대회랑 차이가… … 나는 최근에 치타랑 거의 비슷하게 달렸는데 저 보단 조금 못하네요. 다음에 같이 뛰어봐요” 라는 식의 글을 썼다. 익명이라는 그늘 아래 숨어서 되는대로 지껄이는게 잠깐의 지루함을 달래는 토끼만의 여가생활이었다. 어차피 동물들이 신고를 할 것도 아니고 우리 같은 동물에겐 경찰도 없는데 알 바 아니라는 식이었다. 쪽팔리는 행동인 줄 알지만 뭐… 밖에도 잘 안 나가거니와, 익명인데 누가 썼는지꙼̈ 알 게 뭐냐는 논리였다. 토끼는 그런 동물이었다. 그 짓도 어느정도 하다보니 말하는 방식이 드러난건지꙼̈ 그 짓을 할 동물이 한 놈 밖에 없었던건지꙼̈ 동물들이 토끼가 쓴 댓글임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토끼는 방구석 여포가 되어 (본인말로) 동물들을 왕따시키며 칩거 생활을 하게 되었다.

  유튜브를 보던 토끼는 문득 창 밖 너머에 거북이가 어딜 가는지꙼̈ 움직이긴 하는지꙼̈ 오솔길로 걸어 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거북이와는 어린 시절 동네에서 달리기를 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너무 느려서 속으로 엄청 웃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거북이가 걷는 걸 보니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똑같은 모습이라 한심하다 생각해 심싲하던 차 곯려줄 생각을 했다.
  몇 초 생각을 하던 토끼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생겼는지꙼̈ 양 귀가 하늘을 찌르듯이 뾰쪽 솟았다. 그 길로 냉큼 거북이에게 달려간 토끼는 괜히 친한 척 거북이에게 말을 걸었다.
  “헤이 안녕 거북이야!”
  거북이는 갑자기 나타난 토끼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 거북이야 어디 가는 길이니?”
  거북이는 토끼에 대한 기억이 잘 없었다. 어릴 때 몇 번 본 게 전부라 사실 이 토끼가 그 토끼인지도 알 수 없었다.
   “ 혹시 거북이야. 바쁘지꙼̈ 않으면 나랑 달리기 시합 좀 해주지꙼̈ 않을래? 내가 몇 년 동안 집에만 있었더니 몸이 뻐근하고 관절이 안 좋아져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씩 건강도 챙길 겸 운동을 하려는데 혼자 달리려니 변화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어서 말이야”
  거북이는 토끼가 머쓱해하며 자신에게 경주를 신청하는 속내를 알았지만 같은 숲 속 친구이기에 내색하지 않고 흔쾌히 경주를 수락했다. 토끼가 몸도 안 좋고 재활 목적이 좀 더 크다고 생각하여 내키지꙼̈ 않지만 달려주겠다고 했다. 대신 숲 속 동물들을 모두 불러 경주하면 좀 더 객관적인 피드백이 있을테니 날짜를 정하고 모두가 모인 곳에서 달리자고 했다. 거북이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동물들이 보는 데서 달려야 토끼가 정정당당히, 그리고 다른 마음 안 품고 열심히 달릴 것 같았다.
 
  경기 날, 숲 속 동물들이 이게 무슨 경주냐고 투덜대며 모였다. 마을에서 모두의 신임을 얻는 거북이가 요청하지 않았다면 오기도 싫은 이벤트였다. 게다가 토끼의 속내를 모두 알고 있었다. 결과는 뻔한 경주인데 그걸 알면서 변명거리를 대며 경주를 하는 토끼를 때려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모두 끝까지 참을 뿐이었다.
  경주가 시작되었고, 숲 속 동물들의 생각이 당연하다는 듯 토끼는 거북이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결승점을 향해 달려갔다. 한참을 달렸을까, 중간 지점에서 뒤를 돌아보니 거북이는 보이지도 않았다. 역시 시시하다는 생각이 든 토끼는 여전히 느려도 너무 느린 거북이의 모습에 소리내어 웃었다. 역시 동물들 사이에서 가장 빠른건 자신이고 예전 치타와 동등하게 달린 속도가 죽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다른 동물들과 비슷했다면 아무리 느린 거북이라도 자신의 시야에 보였을 것이라는게 토끼만의 근거였다. 그렇게 허구로 떠들고 다닌 ‘토끼치타동등설’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으며 내친김에 잠깐 눈만 붙이자는 생각으로 낮잠을 잤다.
 
  얼마나 지났을까,  중간점을 지나는 거북이는 세상 모르고 낮잠을 자고 있는 토끼를 보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굳이 자신보다 느린 상대에게 경주를 신청하고 경주 도중에 낮잠을 자다니. 이런 무시가 또 없었다. 일말의 기대를 한 자신이 미웠고 동물들이 보는 경기에서마저 더티플레이를 한 토끼가 저주스러웠다.  '차라리 수영을 하자고 할 걸', '그냥 씨름을 하자고 할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상대의 약한 부분을 이용해 자신의 강점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에 거북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결승점을 향해 걸어갔다.
  거북이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토끼가 자다 깨서 달려와 결승점을 지나도 상관없었다. 거북이는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질 게 뻔한 경주를 수락한 스스로의 선택을 믿지 못하는 것이니 그냥 자신의 선택을 믿으며 결승점을 향해 걸었고 한참이나 걸렸지만 결국 토끼보다 먼저 결승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결승점에서 많은 동물들이 거북이를 응원하며 축하했다. 거북이는 경주를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이겼고 많은 동물들이 자신을 응원하고 있음을 다시 깨닫게 되어 자신이 정말 행복하고 멋진 동물임을 되새겼다.

  “으으….”
  토끼는 해가 지고 밤이 되어서야 추위에 몸을 떨며 일어났다. 주변을 보니 이미 어두워진 경주길.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급하게 결승점으로 달려가면서도 거북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냐, 아무리 시간이 많이 지났더라도, 혹시 거북이가 날 지나쳤을지라도 지금부터 달리면 따라잡을 수 있을거야! 내가 누군데!!!! 치타와 어? 대결에서 어? 동등하개 달렸고 내가 간발의 차로 이겼는데 어?! 이대로 질 순 없어!!!” 토끼는 살면서 달려 본 속도 중에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렸다. 남은 생애 다시 이렇게 달릴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길 정도로 빨리 달렸다.

  결승전에 도착한 토끼는 자신이 그토록 무시하고 까내렸던 거북이에게 졌음을 알았고 거북이가 흘린 땀자국들과 숲 속 동물 친구들이 버리고 간 피켓에 덧칠 된 낙서들을 보았다.
 
  “토끼 병xxx”
  “토끼 쓰xx”
  “우리 숲 속에서 꺼져”
  “ 다신 우리 마을에 보이지도 말고 글도 쓰지마라. 닉네임 치타경운기 너인거 다 안다.”
 
  그제서야 토끼는 상대의 약점을 들추어내는 것으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감추려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을 알았지만, 자신은 이제 사과할 수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2019. 05. 24 - 첫 작성
2024. 04. 29 - 기본뼈대 수정 및 내용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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