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0 중반절

  하지만 어떤 행동에대한 의사가 이성적인 근거들에 의해 밑받침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것은 단지 한 사람의 선호일 뿐이다. 그리고 이성적인 근거라고 제시한다고 하면서, 단지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비슷한 선호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면, 마찬가지로 그것은 이성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선호 대신에 많은 사람의 선호를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일 뿐이다.

  -> 많은 사람들이 선호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성적 근거에 바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그저 다수의 선호일 뿐이지 이성적 근거로 활용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맞다고 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라고 말하며 구체적인 논리 없이 감성의 목소리만 키우고 있다. 이에 밀은 몇 페이지 뒤에 이런 것을 일종의 맹신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한다

p.40 하반절 (번호는 내가 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1) 이렇게 다른 많은 사람들의 선호에 의해서 밑받침된 자기 자신의 선호가, 그의 종교적 신조에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 않은 도덕과 취향과 예절에 관한 자신의 모든 판단들에 대해 2) 그가 가지고 있는 (완벽하게 만족스러울 뿐만 아니라) 유일한 근거가 되고, 3) 심지어 자신의 종교적 신조를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된다.


 

지금 우리가 사는 감성의 시대에는 자유라는 명분 아래 선호(기호)가 정의가 되기도 하고, 정의가 개인의 기준으로 퇴색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성적 근거 없이 그저 감성만 내세운 선호(기호)가 이성적 근거보다 더 큰 힘을 얻어 우리 모두가 누려야 할 자유를 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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