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철학]타인은 정말 지옥일까?, 철학으로 알아보는 SNS 속 고독감
서론: 혼자있길 원하면서도 사람을 찾는 현대인의 모순
현대 사회에서 기묘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면서 은둔형 생활을 선택하고, 퇴근 후에는 집에만 머물며 외부 활동을 꺼립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에너지를 소진시킨다는 이유로 물리적 고립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런 사람들은 SNS에서는 하루종일 활발하게 활동하며 타인과 끊임없이 소통합니다.
이러한 모순적인 행동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결국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은 이런 현대사회의 역설적 현상을 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철학적 관점에서 본 현대인의 고독과 연결
1.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본질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고 보았습니다. 현대인들이 물리적으로는 고립을 선택하면서도 SNS를 통해 타인과 연결을 유지하는 것은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 사회성을 반영합니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를 형성하고 정체성을 확립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소통 방식이 변화했을 뿐, 인간의 근본적인 관계 욕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SNS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아고라(고대 그리스의 공론장)가 되었습니다.
2. 마르틴 부버: 나와 너의 관계
유대계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관계를 '나-너(I-You)' 관계와 '나-그것(I-It)' 관계로 구분했습니다. 진정한 인간관계는 '나-너' 관계에서 시작되며, 이는 온전한 만남과 대화를 통해 실현됩니다.
현대인들이 SNS에서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부버가 말한 '나-너' 관계의 디지털 버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화면 너머의 관계는 진정한 '나-너' 관계가 되기 어렵습니다. 타인을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기보다는 정보나 콘텐츠의 소비 대상으로 바라보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수많은 '친구'와 연결되어 있음에도 여전히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일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로 옛날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시절 ㅅㅇ클럽이나 ㅂㄷ버디 등에서는 무조건 실시간 채팅이 기본이 되었습니다. 채팅방을 들어가면서 인사를 하고, 대화를 마치면 인사를 하고 채팅방을 나오는게 당연한 에티켓이었습니다. 하지만 SNS 시대가 되면서 모두가 알게 모르게 변한 행동패턴은 바로 "일방적 소통" 입니다.
내가 댓글을 쓰면 실시간으로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의 댓글을 봐야 답변이 달리는 구조이죠. 그러다 보니 댓글을 쓰고 누가 댓글을 다는지 기다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댓글을 쓰고 다른 컨텐츠를 소모하러 이동하죠. 그러다보니 발생하는 문제점이 특정 상대와 예절을 지켜가며 이야기 하지 않고, 내 생각을 검토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적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과 티키타카가 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적는 것이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구조적 한계는 면대면에서 상대의 기분과 표정을 고려하며 이어가는 정서적 교류가 빠진 관계입니다. 이 사실을 모른다면 온라인에서 느끼는 공허함을 평생 안고 가야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3. 실존주의와 고독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했지만, 동시에 그는 인간의 실존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고 보았습니다. 하이데거는 '공동-존재(Mit-sein)'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인간의 존재는 본질적으로 함께함을 내포한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인들이 물리적으로 고립을 선택하면서도 SNS를 통해 타인과 연결을 유지하는 것은 이러한 실존적 모순을 반영합니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지만, 동시에 타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디지털 연결은 이 두 가지 모순된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손쉬운 타협점을 제공합니다.
한편,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통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본질이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간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규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자유는 동시에 "책임과 고독"을 수반합니다. 신이나 절대적인 가치가 부재한 세계에서 (사르트르는 무종교로서 신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며, 이는 필연적으로 고독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인간은 자유의지를 통해 인간관계에 치여 지칠지라도 결국 스스로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4.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론
위르겐 하버마스는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상적 담화 상황'에서의 합리적 대화가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의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SNS는 새로운 공론장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알고리즘과 필터 버블로 인해 진정한 의사소통이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의견만 보게 되면서 다양성과 비판적 사고의 기회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하버마스가 말한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디지털 공간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현대인의 모순 속에 숨겨진 심리적 요인들
1. 친밀감과 안전의 균형
인간은 친밀감을 갈망하지만 동시에 감정적 손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SNS는 이 두 가지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완벽한 플랫폼입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지만, 언제든지 화면을 끄고 물리적, 감정적 거리를 둘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 존 볼비의 애착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안전 기지에서 탐험을 하며 성장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집콕족'들은 물리적 집을 안전 기지로 삼아, 디지털 세계에서 사회적 탐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 소속감과 개인성의 딜레마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현대인이 자유와 소속감 사이에서 겪는 갈등을 분석했습니다. 디지털 시대는 이 딜레마를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개인적 공간을 유지하면서도 커뮤니티에 소속되고 싶어 합니다.
SNS는 이러한 모순된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완벽한 해결책처럼 보입니다(= 보입니다 ≠ ~이다) . 우리는 자신의 프로필을 통해 독특한 개인성을 표현하면서도, 해시태그나 팔로워 시스템을 통해 커뮤니티에 소속됨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법은 손쉬운 해결책일지는 몰라도, 세상을 살다 보면 언제나 쉬운 방법이 옳은 방법이 되진 않습니다. SNS의 좋은 점은 활용하되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용기를 내어 스스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건강한 자아상을 구축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3. 디지털 탈억제 효과와 진정성의 문제
존 설러(John Suler)는 온라인 환경에서 사람들이 현실에서보다 더 자기 노출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온라인 탈억제 효과'를 연구했습니다. 물리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SNS를 통해 소통할 때, 우리는 종종 현실에서보다 더 솔직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합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디지털 공간이 때로는 더 진정한 자아를 표현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탈억제는 비이성적 논쟁이나 혐오 표현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존재 방식
1.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
사회학자 배리 웰만(Barry Wellman)은 현대사회의 특징을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라고 정의했습니다. 과거의 공동체적 삶과 달리, 현대인은 개인으로 존재하면서도 네트워크를 통해 여러 사회적 관계를 유지합니다.
이러한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는 현대인의 모순적 행동을 설명하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단일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여러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합니다.
2. 디지털 노마드와 제3의 공간
현대사회에서는 일과 여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습니다.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는 가정도 직장도 아닌 '제3의 장소'가 사회적 연결과 시민적 참여에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디지털 공간은 새로운 형태의 '제3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집에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광장에 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는 현대인의 모순적 행동을 설명하는 또 다른 관점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찾아서
현대인의 모순적 행동은 단순한 이중성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에 대한 적응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사회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디지털 연결이 진정한 인간관계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물리적 만남과 디지털 소통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진정한 지혜는 단순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사회적 본성을 없애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했을 뿐입니다. 진정한 과제는 이러한 도구를 통해 어떻게 더 의미 있고 진정성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이면서도 함께하는 새로운 존재 방식을 배워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철학적 성찰은 우리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은둔형 외톨이가 많아지고 있는 현 시대에 인간관계에 힘들어 하는 많은 분들이 내면의 용기를 가지고 사람들과 좋은 추억, 좋은 시간을 가지며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