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F : 도서관/창작단편

[순수창작마당 #1] 벼랑 끝에 몰린 사람

옐로키드_ 2021. 2. 18.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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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당신의 의지는 안녕하십니까>



어? 떨어지나?
어? 안 떨어지네?
에이 안 떨어지는 거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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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가한) 남자

 

  한 남자가 협곡을 걷다 낭떠러지로 떨어져 벼랑 끝에 서게 되었다. 이 남자가 걸어오던 길과는 벌써 멀어져 저 위에 누가 있는지 식별이 안될 지경이었다. 남자가 서있는 벼랑은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마냥 딱 두 발만 놓을 공간만 있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저 아래로 떨어질 상황이었다. 남자는 한동안 긴장을 놓치지 않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긴장감은 줄어들었고 조금씩 안정감을 찾아갔다.

  "어? 생각보다 위험하진 않네?"

그 생각이 들자 긴장했던 몸이 조금씩 풀리면서 안도감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제 이 남자에게는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남자는 하품까지 하고 있었다.


#2. 조력자

 

  한 여행가가 협곡을 걷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협곡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앞장서서 걷고 있는 낯선 사람이 있어 덜 무섭기도 하고 조금은 덜 지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앞장서서 걷던 남자가 발을 헛디뎠는지 그만 협곡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다급하게 달려가 협곡 아래를 내려다 보았는데, 그 사람의 흐린 실루엣만이 보이는 듯 하였다. 생사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육안으로나마 얼핏 상태를 알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주변을 보니 아마 그 남자의 허리춤에서 풀어진 듯한 밧줄이 팽팽하게 떨고 있었다. 줄이 떨리고 있는 것을 보니 떨어진 남자가 아직 살아있다고 확신했다. 여행가는 그 사람이 떨어지지 않도록 밧줄을 힘껏 당겼다. 혹시라도 아래에서 당기는 힘이 느껴진다면 그 남자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줄을 한참 붙잡고 있는데 등산객 두 사람이 지나가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설명을 해주었더니 곧 등산객 두 명도 밧줄을 잡고는 그 남자를 끌어올리자고 했다. 떨어진 남자가 올라오려 노력한다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구조할 수 있다고 했다. 마침 해도 산을 넘어가고 있어서 서로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밤이 되기 전에 구조를 끝마쳐야 했다.


#3. 동상이몽, 사람 마음 다 내 마음 같지 않다.

  이제 벼랑 아래의 남자는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발 끝에서 돌가루들이 저 바닥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이젠 긴장조차 하지 않았다. 남자는 지금에서야 느낀 거지만 허리춤에 있는 밧줄에 장력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어디 나무뿌리에 밧줄이 걸린 것 같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괜히 어설프게 밧줄을 당겨 올라가려 하다가는 줄이 끊어지거나, 나무뿌리가 뽑히거나, 자신이 발을 헛디디거나, 어느 쪽이든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도 남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구원해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몇 분 시간이 흘렀을까, 불안감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이 남자는 어차피 밧줄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고, 올라가려다 죽든 굶어 죽든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괜히 어설프게 행동하다 명을 재촉할 바에야, 누군가 헬기라도 타고와서 자신을 구원해주리라는 희박한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연명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뒷주머니에서 꺼낸 땅콩을 입에 털어넣고는 땅콩껍데기를 벼랑 아래로 퉤! 하고 내 뱉었다.

...

 결국 밧줄을 힘껏 당기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야 할 길도 가지 못한 채 추워지는 산 속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만 정작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은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망상 속에 빠져 하품만 하고 있었다.

 

-2021. 02. 18 작성
- 2021. 04. 27 검수 및 수정

 

자신 때문에 고생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려는 사람, 혹 나의 모습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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